패션에서의 유행은 언제나 극에서 극으로 넘어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크게 유행하던 아이템과 스타일은 순식간에 한물간 것으로 치부된다.
드라마틱하고 화려한 패션으로 어느 누구보다도 돋보이길 원하며 자신의 패션 감각을 뽐내고 싶어하던 패션 피플들이 이제는 눈에 띄지 않고 대중에 스며들어 있고 싶어한다. 그러한 현상을 일컬어 일명 ‘놈코어(Norm core) 패션’이라는 용어까지 생겼다.
보통의, 평범한, 정상적인 이라는 뜻의 ‘Normal’과 핵심의, 극도로, 철저한 등의 뜻을 가진 ‘Hardcore’의 합성어인 놈코어는 지극히 평범한 특징 없는 패션을 추구한다. 공부벌레인 너드(Nerd) 패션과는 또 다르다. 그런데 이 놈코어 패션이 최근 각광받고 있는 북유럽 디자인과 같은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면 이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스웨덴에는 라곰(Lagom)과 옌테(Jante lov)의 법칙 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라곰이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적당함’을 의미하며, 옌테의 법칙이란 그들이 삶에서 지키는 십계명과 같다.
개인의 성과와 공동체의 집단적인 노력에 대한 성과를 중요시하는 사회적 용어로 개인의 평범함을 강조한다. 대표적으로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말 것, 당신이 더 나은 존재라고 생각하지 말 것, 당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 것, 다른 사람이 당신을 신경 쓴다고 생각하지 말 것’ 등이 있다.
자신의 개성이 지나치게 두드러져 어울려 사는 데 부조화를 이루는 행동은 하지 말라는 것인데, 지금까지 무조건 남들보다 튀고 싶어하던 패션 피플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던 생각들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미국식 교육에서 끊임없이 주입시키는 개성을 강조하고 ‘너는 특별하다’는 개인주의적 사고방식과도 대척점에 있으며, 오히려 ‘중용’을 강조하거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무리 속에 있길 강조하던 우리네 사고방식에 가깝다.
스웨덴에서 탄생한 브랜드 ‘아크네 스튜디오’가 최근 쿨한 브랜드로 떠오른 것은 이러한 생각이 공유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크네’ 컬렉션에는 다른 유럽 패션 브랜드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실루엣이나 비례감, 소재를 사용한 눈에 띄는 의상들도 있지만, 그 외에도 단정하고 소박하며 때로는 촌스러울 정도로 평범해 보이는 옷들도 한 컬렉션 안에 포진되어 있다. 아무리 트렌드가 됐다하더라도 평범한 패션을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사고 싶어할까?
사실 ‘아크네 스튜디오’가 패션 피플들에 눈에 띄게 된 것은 옷 그 자체보다는 ‘아크네’에서 선보이는 ‘아크네 페이퍼’라는 잡지와 아크네 브랜드가 만들어진 스토리의 역할이 컸다. ‘아크네’의 시작이 패션뿐만이 아니라 디자인 전반에 걸쳐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모임이었고, 1년에 두 번 발행되고 있는 아크네 페이퍼 또한 영화, 예술, 패션, 인테리어, 건축 등의 다양한 문화의 주제를 다룬 사진과 인터뷰, 칼럼을 담고 있다.
또 11개 국가에 있는 33개의 아크네 스튜디오 매장은 제각기 다른 콘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도시가 갖고 있는 고유한 특징을 바탕으로 한다. 결국 사람들이란 패션 브랜드에서 원하는 것은 질이나 디자인이 좋은 옷 그 자체만 사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담고 있는 철학, 라이프 스타일에 영감을 주는 것들을 공유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아크네 스튜디오’의 옷에서 강조되는 것은 실용성이다. 이 또한 스웨덴적 사고방식이 녹아있는 것이다. 아크네가 최근 가장 쿨한 브랜드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현실에 기반한 기능적인 옷이라는 점, 그리고 편안함이 바탕이 되어 입은 사람에게 당당한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크네’의 실루엣은 프랑스 브랜드가 그러하듯 귀부인처럼 허리를 졸라매거나, 이탈리아의 로마 신화의 여신처럼 가슴과 엉덩이의 곡선을 강조하는 실루엣을 찾아 볼 수 없다. 그저 자연에 가까운 실루엣을 유지한다.
자연은 무엇보다 그들이 강조하는 가치이다. 대부분의 서양 문화가 자연을 정복하고 착취하려는데 비해 척박하고 두려움의 대상이 될 법한 북유럽의 자연이 그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 된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하다. 스웨덴이 자랑하는 실용적 혁신은 자연의 특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가치이기도 하다. 스웨덴의 외곽 삼림지대에서는 다양한 자원이나 재료를 구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스웨덴인들은 자작나무, 소나무, 면, 펠트 등의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했다. 어쨌거나 스웨덴 사람들은 자연을 기반으로 한 기능성을 생각한다. 그들에게 있어 기능주의란 미국 사람들과 같이 그들에게 현대적 삶을 열어준 마법과도 같은 이념이었던 것이다.
스웨덴은 최초의 디자인 서적을 발행한 역사가 있다. 1899년에 초판이 인쇄된 ‘스웨덴 모던 디자인, 3대 원론(Modern Swedish Design: Three Founding Texts)’은 기능과 미적 감각, 합리적 가격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지금도 꾸준히 증판 되고 있다.
책의 공동 저술가 중 미술사가 그레고르 파울손과 건축가 군나르 아스플룬드가 조직한 ‘스톡홀름 전시회’는 1930년부터 매년 수개월씩 가구와 친환경 주택 모형 같은 현지 작품을 대중에 선보여 왔다. 이 전시회를 통해 수많은 스웨덴인들은 기능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을 접했고, 국내 건축가들은 초청비를 받으며 자신의 디자인을 널리 알렸다. 대중적이며 평등한 디자인 문화는 스웨덴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뿌리를 둔다.
이러한 특징은 패션 브랜드에 있어 독이 될 수도 있지만 ‘아크네 스튜디오’는 아크네 페이퍼라는 예술 활동을 통해 평범함을 중시하는 스웨덴의 유산을 가지고도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브랜드로 클 수 있었다.
전통이 단점이 될 수 있는 현대에 그러한 특징을 장점으로 키울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인간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예술과 인문학이었던 것이다.


고학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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