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한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사대부의 자제로 태어났지만 하고 싶은 일도 재미있는 일도 없이 그저 살아가던 평범한 인생에 의미가 생긴 것이다. 난잡한 소설을 쓰는 순간, 소설을 생각하는 순간만큼은 신분도 체면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작품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그 속에서 행복할 뿐. 음란해서 행복한 영화 <음란서생>이 개봉 첫주 주말 전국 88만300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사극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음란하고 음란해서 행복한 기운을 스크린 밖 전국 관객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음란하기에는 너무도 거추장스러운 옷, 한복으로 은밀한 음란함을 보여주는 영화 <음란서생>의 욕망을 살펴봤다.

개봉까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던 영화 <음란서생>은 제목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막상 공개된 영화는 사람들의 기대(?)와 다르게 코미디, 멜로, 느와르를 오가며 한 인물의 행복 찾기를 그리고 있다.
<음란서생> 속에는 음란함이 없다(?)
명문 사대부 가문의 장손인 김윤서(한석규 분)는 뛰어난 글재주를 가졌지만 출세에 관심이 없다. 동생이 당파싸움에 휩쓸려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도 상소 한 장 올리지 않을 정도로 세상사는 그에게 흘러가는 주변 이야기일 뿐이다.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은 삶을 살던 그는 어명을 받들던 중 우연한 기회에 난잡한 소설을 접하게 된다.
‘꿈 꾸는 것 같은 거, 꿈에서 본 것 같은 거, 꿈에서라도 맛보고 싶은 거…’
난잡한 소설의 인기 비결인 진 맛. 소설의 진 맛을 찾기 위해 노력하던 윤서는 급기야 가문의 숙적인 이광헌(이범수 분)을 끌어들여 소설에 삽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두 양반이 만든 ‘흑곡비사’는 장안의 화제가 되고 두 사람을 자신들의 소설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소설 속 실제 모델인 왕의 여자 정빈(김민정 분)을 삽화에 등장시키는 모험을 하게 된다.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이는 파국을 맞아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함으로써 행복을 찾은 두 양반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조선시대 배경의 영화가 실제로는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
‘댓글’, ‘폐인’ 등의 대사들은 윤서와 광헌이 만드는 난잡한 소설이 인터넷에 떠도는 야설임을 알려준다. 배우들의 의상 또한 전통적인 한복 원단이 아닌 현대 의상의 원단을 사용하고 블랙 등의 파격적인 컬러를 사용함으로써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것이 바로 진 맛
“색(色)이 제법일세”라는 영화의 광고 문구는 영화 속 의상을 한마디로 표현한 듯하다.
전체 제작비의 1/3을 의상과 미술에 쏟아부었다는 <음란서생>은 세 명의 주인공을 비롯해 왕, 조 내관, 유기전 주인과 필사쟁이, 모사쟁이 등 중심 인물들의 캐릭터와 잠재된 욕망을 걸치고 의상의 원단, 컬러, 액세서리 사용을 통해 표현했다.
전형적인 사대부인 윤서는 그레이·블루 계열의 한복과 배자를, 풍류를 아는 무관 광헌은 베이지에 바이올렛 컬러로 포인트를 주면서 갓 장식으로 멋을 살렸다. 조 내관은 레드 컬러 위에 블랙 의상을 매치함으로써 정빈에 대한 사랑을 억누르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후반부 목욕탕 신에서 보여준 왕의 블랙 의상은 껍데기만 남았지만 동시에 강한 절대 권력자로서 왕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의상을 담당한 정경희 디자이너는 <혈의누> <형사> 등을 통해 이미 한복이 전해주는 아름다움을 보여준 인물.
<혈의누>는 섬과 제지소라는 공간의 이미지를 살려 움직이는 느낌의 의상, <형사>는 다양한 시도로 한복의 거추장스러운 이미지를 없애는 데 주력했다면, <음란서생>은 클래식한 의상 속에서 높은 퀄리티를 추구했다고 한다.
의상팀은 원하는 컬러를 표현하기 위해서 한 벌의 옷에도 3∼4번의 염색 과정을 거쳤음은 물론이고 엑스트라들의 짚신도 직접 염색할 만큼 노력을 기울였다. 모사쟁이와 필사쟁이의 삼베 의상은 원단 특유의 뻣뻣함을 부드러워 보이게 만들기 위해 홍두깨질과 망치질은 물론 콩기름에 담가 옷의 간지를 살렸다.
정경희 디자이너는 상궁과 내관 등 주변 인물들의 의상에 가장 많은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오히려 의상을 통해 중심 인물들을 보여주는 진 맛을 살릴 수 있었다.
<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