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을 가다가/ 눈발치는 산길을 가다가/ 눈 속에 맺힌 새빨간 열매를 본다/ 잃어버린 옛 얘기를 듣는다/ 어릴 적 멀리 날아가버린/ 노래를 듣는다.
‘가난한 사랑 노래’로 유명한 시인 신경림의 ‘길’이라는 시의 일부다. ‘길’이라는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와 이미지는 세상에 난 수많은 길만큼이나 다양하다. 구불구불한 오솔길, 쭉 뻗은 고속도로, 미로 같은 골목길, 숲이 우거진 둘레길, 울퉁불퉁한 산길, 낙엽 떨어진 돌담길 까지 길은 그 주변의 풍경을 같이 연상시킨다.
패션쇼에도 길이 있다. 다양한 길의 형태를 단순화 시키면 바로 패션쇼의 길, 런웨이가 된다.
런웨이의 원래 뜻은 활주로이다. 그래서일까? 가장 많은 형태인 직선으로 쭉 뻗은 런웨이를 걸어 나오는 모델은 마치 활주로의 비행기가 날아오는 듯한 압박감을 준다.
반면에 런웨이가 구불구불한지, 곡선적인지, 직선적인지, 많이 꺾여 있는지 등의 속성에 따라 패션쇼장은 오솔길이나 골목길 등 다양한 길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추상화 된 공간인 런웨이는 어떤 색을 사용하는 지에 따라 한층 더 추상성이 강화된다. 바로 검정과 흰색이다.
검정과 흰색은 색이라기 보다는 명도인데, 완벽한 흑백은 자연에서는 찾을 수 없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염료이기 때문에 검정과 흰색의 사물은 달리 보면 굉장히 추상화된 색이다.
시각적으로도 흑백의 효과는 아주 강렬하다. 어떠한 공통점도 없는 가장 높은 명도와 가장 낮은 명도의 조합은 현실이 아닌 추상적인 세계를 표현한다. 따라서 이렇게 추상화된 길인 런웨이와 흑백이 만나면 그 추상성은 배가된다.
흑백으로 채워졌던 3차원의 공간 런웨이는 사진을 통해 2차원으로 평면화되는데, 이러한 속성을 고려해 그래픽적인 재미를 줄 수도 있다. 소실점으로 집중도를 높여주거나 일그러진 체스판처럼 격자무늬를 활용하기도 하고, 면적 대비를 통해 의상을 더욱 강조하기도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렇게 강렬한 시각적 효과라도 선보이려는 옷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사용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새로운 옷을 관객에게 선보이는 것이 패션쇼의 목적이라면, 그 옷을 효과적으로, 즉 장점을 부각시키고 단점은 가려지게 내보이는 것이 패션쇼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고학수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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