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도 노골적인 이중적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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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 사브 (ELIE SAAB) Ⅱ

2014-08-20 오후 3:35:23

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 54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배경으로 1980년대 레바논 내전에서 두 친구의 엇갈린 운명을 그린 소설이 있다.

‘드 니로의 게임’이라는 이 소설에서는 17세의 소년들이 1만개의 폭탄이 떨어지는 것이 아무렇지 않아지는, 무려 17년의 내전으로 전쟁에 무뎌져 가는 삶이 묘사된다. 21세기에 접어든 베이루트는 중동의 파리라는 옛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당시의 상처가 건물 곳곳에 남아있기도 하다. 도대체 이러한 상황에서 앨리 사브는 어떻게 그토록 화려하고 찬란한 패션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는 너무나 힘겨운 현실에서 도피해 환상의 세계로 더욱 깊숙이 파고든 것이 아니었을까?

중동이라고 불리는 지역에서 지중해에 바로 맞닿아 있는 레바논의 베이루트는 중동에서 가장 유럽화된 미인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는 평을 듣는다.


중동의 다른 국가들에서는 여인들이 부르카(Burka-눈까지도 망사로 되어있는 천으로 전신을 가리며 아프가니스탄에서 주로 착용), 니캅(Niqab-눈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며 파키스탄 여성들이 주로 착용), 차도르(Chador-얼굴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며 이란 여성이 주로 착용). 히잡(Hijab-얼굴만 내어놓는 두건으로 머리카락을 가린다. 종교적인 의미뿐 아니라 여성성을 표현하는 것이며, 시리아 등에서 착용) 등을 둘러 얼굴을 보기 힘든 것에 비하면 완전히 서구화 되어 있는 곳이다.

의상뿐 아니라, 서구에 대한 인식 또한 여타 이슬람 국가에 비하면 꽤 유연한 편이다. 베이루트가 이렇게 개방적인 것은 오랜 역사에서 유래된 것이다. 베이루트의 역사는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C 3000년, 페니키아인이 지중해안을 중심으로 도시 국가를 건설하면서 베이루트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베이루트는 지중해에 접한 지리적 이점을 살려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무역하기 좋은 지역 즉, 돈이 몰리고 먹고 살기 좋은 곳은 누구나 눈독들이기 마련이다. 이 천혜의 요지를 차지하려는 많은 세력들의 다툼으로 이내 베이루트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고 만다. 고대에는 페르시아, 로마, 비잔틴 등의 지배를 받았고, 중세에는 십자군과 이슬람의 전쟁터가 되었다. 그리고 16세기에는 오스만 투르크에 합병되어 19세기까지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베이루트는 20세기 들어 프랑스에 의해 식민지화 되면서 유럽풍의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독립한 후, 오랜 기간 이어진 기독교계와 이슬람계의 내전과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아름답던 도시가 초토화 되고 만 것이다. 최근 들어 베이루트는 전쟁의 아픔을 딛고 화려했던 옛 모습을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이렇게 다양한 문명과 문화가 교류되었을 베이루트의 오랜 역사를 조금이라도 곱씹어 본다면, 무역을 통해 얼마나 진귀하고 화려한 물자들이 몰려들었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문화권에서도 표현되는 방식은 다르지만 여성들을 보편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 선택 되는 오브제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클래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앨리 사브는 그것을 빛에 의한 반짝임, 섬세한 레이스, 그리스 여신풍의 하늘하늘하게 휘날리는 풍성한 천, 그리고 드러내고 싶으면서도 가리고 싶은 이중적인 여심으로 판단했다. 그의 컬렉션에는 이 네 가지 주제가 끊임없이 변주되면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빛에 의한 반짝임, 즉 ‘앨리 사브’가 오뜨 꾸뛰리에로 선정된 가장 큰 이유인 화려한 비즈장식을 살펴보자. (사진 1-1)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반짝이는 것에 마음이 뺏긴다. 하물며 미물인 까마귀 조차 반짝이는 물건들을 둥지에 모아놓는데, 여자를 아름답게 꾸미는데 이러한 특성이 빠질 수야 없다. ‘엘리 사브’의 컬렉션에는 바로 이 찬란한 반짝임이 빠지지 않는다. 비즈, 시퀸처럼 아주 작은 조각 수 만개를 이어 붙여 그 자체로도 빛을 반사해 내지만, 다양한 무늬로도 표현한다.

‘앨리 사브’ 의상의 특징은 한 벌의 옷에 다양한 색을 넣지 않고 거의 한 가지 색으로만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색을 잘 못 사용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주로 사용하는 소재들, 즉 빛을 반사하는 소재나 레이스, 쉬폰 등을 더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하지만 때때로 프린트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 프린트조차도 빛이 나는 듯 보인다면 믿어질까? (사진 1-2)





그가 선보이는 프린트의 비밀은 검정과 흰색을 잘 사용하는데 있다. 가장 명도가 높은 색과 낮은 색이 동시에 들어감으로써 빛나 보이는 것이다. 서양 회화에서 빛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되는 방식이다.

‘앨리 사브’의 컬렉션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가 섬세한 레이스이다. (사진 2)





 


흥미로운 것은 옷 자체는 노출이 심한 디자인이 아닌데, 레이스를 다양한 소재와 섞어 디자인하여 섹시한 여성을 표현하는데 사용된다는 점이다. 이는 이중적인 여심의 표현과도 일맥상통한다. (사진 3)












레이스는 투명과 불투명의 조화, 얌전한 듯 섹시한 반전의 매력을 드러내기 위한 소재인 것이다. ‘앨리 사브’는 외간 남자에게 여성성을 드러내면 목숨마저도 위협받는 중동 여성들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디자이너였다. 그가 빠른 시간에 중동 지역에서 각광받게 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중동뿐 아니라 지중해 연안에 자리한 레바논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유럽쪽 문화에도 그는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특히 천을 아낌없이 사용하여 바람에 풍성하게 휘날리는 아름다움을 강조한 그리스 여신풍의 드레스들도 그의 컬렉션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디자인이다.

차도르같이 거대한 천을 평소에도 두르고 다니는 중동여성들에게는 이러한 드레스가 특별한 날에만 입어야 하는 옷으로 생각되지 않을 것 같다.

또한 중동의 패션은 지나치게 화려함만을 강조해 촌스러워 보이는 디자인도 많은데, ‘앨리 사브’는 현대 여성을 위해 절제되고 세련된 디자인도 많이 선보인다. (사진 5)

이러한 디자인의 특징들은 중동여성 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여성들에게 보편적으로 매력 있게 다가간다.





고학수 전문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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