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현대적인 라틴 여성, 캐롤리나 헤레라 (Carolina Herr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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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 특집 ③

2014-07-24 오후 2:57:37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특히 베네수엘라는 미스 월드나 미스 유니버스 같은 국제적인 미인 대회에 수상자를 많이 배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 미인대회 입상자만 30%에 육박한다는 통계가 그것을 증명한다.

 베네수엘라에는 미인사관학교라 불리는 미인양성캠프가 있으며, 2만여 개의 크고 작은 미인대회에서 뽑힌 여성들이 다시 모여 세계 대회를 준비한다.

오늘 소개 할 라틴 아메리카의 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라가 바로 이 베네수엘라가 배출한 디자이너이다. 패션계의 영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캐롤리나 헤레라는 그러나 일반적인 건강하거나 섹시한 이미지의 라틴계 미녀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일흔이 넘었음에도 뼛속까지 우아할 것 같은 분위기가 그녀를 감싸고 있다.

우선 베네수엘라에 대해 조금만 더 알아보자. 남아메리카 대륙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베네수엘라는 인구 약 2900만 명에 남한의 9배에 달하는 면적을 가지고 있다. 특히 베네수엘라의 석유 매장량은 걸프만 지역에 이어 세계 2위이다.

훨씬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미국이나 캐나다의 석유 매장량 보다도 앞서는 양이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자원부국인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따라서 베네수엘라는 석유관련수출품이 수출의 약 90%를 차지하며, 베네수엘라의 연관 검색어에 ‘베네수엘라 기름값’이 나오는데 의아할 필요가 없다.



베네수엘라 국명의 기원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인디오들의 언어로 "큰 물"을 뜻하는 "Veneciuela"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아메리카 대륙을 신대륙으로 인지한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지금의 베네수엘라의 마라까이보 호수에 물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인디오들의 마을을 보고 이탈리아 도시 베네치아의 수상가옥과 닮았다고 하여 이 땅을 이탈리아어로 "작은 베네치아"를 뜻하는Venezuola라고 이름 붙였던 것이 에스파냐어로 바뀌어 같은 뜻의 Venezuela가 되었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1498년 콜럼버스의 탐험대에 의해 발견되었고, 이후 300년간 에스파냐의 식민지 지배가 지속되었는데, 그 동안 인디오는 금(金)채굴과 커피·카카오 등의 재배를 위해, 아프리카 흑인 노예는 해안지대에서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혹사당했다.

1811년 남 아메리카에서 제일 먼저 독립하였다. 1819년부터 콜롬비아, 에콰도르와 함께 그란(大)콜롬비아공화국을 이루다가 1930년 완전한 독립국가가 되었다.







이러한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서 1939년 태어난 캐롤리나 헤레라는 엄청난 집안에서 태어났다.
 
스페인에서 건너온 선조들이 1500년대에 지은 방만 65개인 집에서 자랐으며, 베네수엘라의 공군장교이자 카라카스의 주지사를 지냈던 아버지와 대지주의 집안 출신이었던 어머니를 두었다.

그녀의 타고난 배경과 그녀가 배운 엄격한 교육, 그로 인해 형성 된 우아한 태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반영된 캐롤리나 헤레라의 디자인 등을 통합적으로 보면 그제서야 그녀가 패션계의 영부인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단지 미모나 분위기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단순히 그녀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지금의 세계적인 브랜드로써의 가치를 갖게 됐다고 오해하면 섭섭할 것이다. 물론 그러한 배경이 여러 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확실하지만, 그녀의 패션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면 결코 이루지 못했을 결과다.

좋은 집안의 귀한 아가씨로 자란 캐롤리나 헤레라는 두 번의 결혼으로 딸 넷을 둔 어머니로의 삶을 살다가 마흔이 넘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패션계에 입문하게 된다.

1971-80년까지 세계 여류 명사들을 대상으로 한 베스트 드레서에 선정될 정도로 공식적으로 패션 감각을 인정받았던 그녀지만 정식으로 패션 공부를 한 적이 없었기에 위축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단순히 자신이 디자인한 패턴의 섬유를 선보이고 싶어했으나 전설적인 패션 에디터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조언으로 1981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클럽에서 열린 첫 컬렉션에서 24벌의 꾸뛰르 급의 드레스를 선보이며 패션계에 첫 발을 내디뎠고, 그 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성복은 물론 1990년대에는 다양한 향수를 선보였고, 2000년대 이후에는 세계의 여러 도시에 그녀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며 그녀의 브랜드를 확장해 가고 있다.

‘캐롤리나 헤레라’라는 브랜드는 특히 수입 웨딩드레스에 대한 열풍으로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잘 알려졌다.

1987년 존. F. 케네디의 딸인 캐롤라인 케네디의 웨딩드레스 의뢰로 시작된 캐롤리나 헤레라의 웨딩 드레스 라인은 영화 트와일라잇의 결혼식 장면에서 빛을 발했으며, 최근에는 패션계의 유명인사 올리비아 팔레르모와 가수 제시카 심슨의 웨딩드레스로 선택 받아 또 한번 화제가 되었다.

캐롤리나 헤레라의 디자인은 다른 라틴 아메리카의 디자이너들처럼 남미 특유의 자연환경이 녹아있거나 스페인의 영향을 받았다기 보다는 그녀의 태생적 가풍이 그녀의 디자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10대였을 때 할머니를 따라 파리의 ‘발렌시아가’나 ‘랑방’의 하우스로 컬렉션을 보러 갔었고, 그로 인해 우아함이 최고의 가치였던 1950년대의 디자인에 그녀의 높은 안목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지금 바로 이 시대에 어울리는 우아함을 녹여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온 것이 지금의 캐롤리나 헤레라의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캐롤리나 헤레라의 디자인이 사랑 받는 것은 바로 이 현대 상류층 여성이 드러내고 싶어하는 이미지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녀의 컬렉션은 우아하면서 여성스럽고, 고전적이면서도 고리타분하지 않은 디자인으로 가득 차 있다.

결국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색의 허리를 꼭 조인 A라인의 롱 스커트를 입은 캐롤리나 헤레라 그녀 자신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바로 ‘캐롤리나 헤레라’ 브랜드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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