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주의가 발달한 네덜란드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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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앤 롤프 (Victor&Rolf)

2014-06-26 오후 6:55:50



 


패션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들 중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 쉬운 것이 바로 ‘유럽사람들은 옷을 잘 입는다’는 점이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평균적으로 사람들이 옷을 참 잘 입고 다닌다는 인상을 받는다. 자신을 꾸미는데 많은 노력을 들이는 젊은 층은 세계 공통 현상이라 치더라도, 특히 중장년층, 노년층에서 옷의 색을 잘 맞춰 입고, 가방과 구두, 액세서리까지 신경 써 입는다는 인상에서 나타나는 우아함의 생활화는 그 나라의 디자인적 국력까지 연상케 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세심히 살펴보면, 이러한 현상은 사실 일부 대도시나, 패션과 관련된 도시에서 보여지는 현상이다.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유럽 여행을 한다고 하면 가는 곳이 파리, 런던, 또는 유럽의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 수도, 그 중에서도 쇼핑지나 관광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길에서 보이는 사람들은 옷을 신경 써서 입고 와야 되는 장소에 있는 것이다.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명동이나 홍대를 돌아다닐 때와 지방 소도시의 거리를 돌아다닐 때 받는 느낌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하지만 나라마다 옷을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같은 유럽이라도 마찬가지다. 파리가 패션의 도시로 불리는 것은 비단 국가 산업으로써의 패션의 역사가 오래되었고 따라서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모여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그들의 옷을 소비하고 받아들이는 층이 두텁고, 소비자의 눈높이나 취향의 수준 또한 높기 때문이다. 이렇게 패션을 대하는 자세를 논하기 위해서는 ‘유럽’이라고 일반화 시켜 말하기 보다는 특정한 국가, 그 중에서도 대도시, 그 중에서도 일부 지역이라는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


네덜란드에서도 수도나 대도시가 아닌 작은 소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빅터 앤 롤프는 화려한 패션 세계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그것은 앞서 살펴 보았던 벨기에의 라프 시몬스도 비슷하다.

각각 맞벌이 부모님을 둔, 삼형제 사이의 둘째와 막내로 자란 빅터 앤 롤프는 환경적 영향보다는 아름다움에 대한 천성적인 관심과, 어떤 계기를 통해 패션의 환상적인 세계에 매료되었음이 분명하다. 롤프는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패션과 관련된 미디어와 접할 기회가 매우 적었고 많은 시간을 내가 보았던 얼마 되지 않은 이미지에 영감을 받으면서 내가 꿈꾸는 패션에 대해 몽상하면서 보냈다”고 하였다.

“패션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 네덜란드가 준 구속 없는 자유, 그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았다는 것이 행운이었다”라고 했듯, 패션과 거리가 먼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잡지에서 보는 패션의 이미지는 현실로부터의 도피처와 같았고 꿈을 꿀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하였다.

“성장기에 패션에 관한 정보가 부족했던 것이 창의적인 틴에이저, 풋내기 패션 디자이너로서 성장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이미지가 부족한 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였고 때론 시간을 허비할 지라도 우리 자신만의 패션을 창조하게 하였다.”

이처럼 혼자만의 여유로운 공상의 시간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이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으며, 어떠한 규칙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패션세계를 형성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어린 시절의 몽상이 훗날 그들의 패션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단단한 대리석의 조각상을 부드러운 천으로 표현하려 했던 2009 FW를 비롯해, 톱으로 잘린 드레스를 통해 세계 경제의 위기를 상징했던 2010 SS 컬렉션, 엄청난 부피로 겹겹이 입은 의상을 또 다른 모델에게 입히고, 타인의 옷을 다시 내가 입어 새로운 형태로 거듭난 2010 FW, 소녀들의 인형놀이의 환상을 실현한 2012 SS, 달과 늑대의 은유적 표현 같았던 2012 FW 등 그들의 패션쇼는 말 그대로 어린 아이의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데 엄청난 재능을 보여왔다.


그들은 여러 인터뷰에서 네덜란드에서 패션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이들은 파리 사람들은 문화적 특성상 패션을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는데 반해, 네덜란드인들은 패션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며 패션을 단지 취미로만 생각한다고 하였다. 빅터 앤 롤프가 우아함, 세련됨, 스타일 등을 갈망하면서 성장할 때 네덜란드의 전통은 이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사치를 지양하는 네덜란드의 종교적 특성이나 척박한 환경을 개척하고 상업을 발달시켜야 했던 네덜란드의 환경과 관련이 있다.


이렇듯 패션과 거의 관련이 없는 네덜란드 문화권의 특성 때문에 패션을 세계 공통의 언어로서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들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네덜란드의 기질이나 전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였다고 고백하였다. 이들은 ‘정말 아름다운 것은 글로벌한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 그들이 자라온 환경을 이해한다면 이러한 그들의 생각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반면에 빅터 앤 롤프는 공공연히 전통적인 요소를 디자인 발상에서 기본적인 요소라고 밝힌 바 있는데, 그럼 지금까지의 태도와는 상반되는 말 아닌가? “우리는 항상 클래시시즘(고전주의)을 출발점으로 생각한다. 어떠한 것도 클래시시즘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을 취하고 이를 비틀어서 새로움을 발견하고자 한다.” 즉,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 클래시시즘은 자국의 역사나 문화적 전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패션 그 자체와 관련된 것이었다. 미학이나 미술사, 복식사뿐 아니라 패션 산업에까지 나타나는 전반적인 현상들을 그들은 다루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주의 디자인은 전통문화가 빈약한 나라에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빅터 앤 롤프의 패션쇼를 보면 떠오르는 것은 ‘개념적인 디자인’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한 때 큰 인기를 끌었던 네덜란드의 그래픽 디자인이나 산업디자인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동시대, 즉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이어 한 국가에서 이러한 동일한 디자인적 경향이 발생했다는 것도 한편으로는 그 나라의 경향이자, 전통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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