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버리의 개과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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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 47 - 버버리 (Burberry)

2014-06-13 오후 2:44:41





2000년대 이후 ‘버버리’가 비슷한 이미지의 ‘아쿠아스큐텀’이나 ‘닥스’와 확연히 다른 브랜드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다. 뼈를 깎는 경영 방식의 변화, IT 기술의 빠른 도입, 그리고 무엇보다 브랜드의 이미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베일리의 힘이 컸다.


그의 디자인은 무엇이 얼마나 달랐기에 ‘버버리’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크리스토퍼 베일리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이 좋은 결과를 낸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도 처음에 방향을 잘 못 잡았다. ‘버버리’에 영입되어 처음으로 2002년 SS 컬렉션을 선보였던 30살, 새파랗게 젊었던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이전 직장이던 ‘구찌’의 특징인 섹시함을 버리지 못하고 ‘버버리’에 적용시켰다.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주고 싶은 젊은 디자이너의 치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중, 장년층이 즐기는 브랜드의 이미지에서 스타일과 타깃이 젊은 층으로 조정 되었을 뿐, 특별함을 느끼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그렇게 초반 몇 년간 ‘버버리’의 변화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변화의 계기는 2005년 ‘버버리 프로섬’에서 남성복 컬렉션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는 ‘버버리’의 진짜 나아갈 방향의 실마리를 잡았다. 남성복은 여성복에 비해 트렌드에 좌우되는 색이나 장식, 소재의 변화의 폭이 적다. 그 미세한 변화 속에서 어떻게든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남성복 디자인의 묘미이다.


그는 노란 비닐 소재의 트렌치 코트나 하얀 개버딘의 트렌치 코트 등 과거의 트렌치 코트에서 한 가지 요소만 바꿔 젊은 분위기의 트렌치 코트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그가 최근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과도 일치한다. ‘혁신 보다는 진화’를 선택한 것이다. 초기에 그가 ‘버버리’의 혁신에 집착해 과거의 ‘버버리’를 완전히 버리려 했던 컬렉션은 사실 실패에 가까웠다. 오히려 ‘버버리’의 상징인 트렌치 코트를 현재에 맞게 조금씩 변형시키면서 ‘버버리’는 진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렇게 남성복 컬렉션을 통해 트렌치 코트의 진화에 대한 영감의 물꼬를 틔운 그는 여성복에서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실험을 시작한다. ‘버버리 프로섬’의 진짜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트렌치 코트를 전면에 내세운 2006 FW 컬렉션으로 드디어 그의 재능이 폭주하기 시작한다. 슬림한 실루엣의 트렌치 코트에 모피 트리밍을 덧대는 방식으로 시선을 사로 잡은 것이다. 과거에 머물러있던 트렌치 코트는 더없이 젊고, 럭셔리 해지고, 갖고 싶어졌다.


결국 많은 명품 브랜드가 그랬듯이 그는 ‘버버리’의 가장 대표적인 아이콘인 트렌치 코트를 변화의 열쇠로 잡은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선에서 변화를 주는가가 관건이었다.


이는 영국의 전통 있는 브랜드로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던 브랜드 ‘닥스’ 컬렉션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닥스’는 여전히 그 특유의 중후한 패턴과 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껏해야 패턴의 크기에 변화를 줄 뿐, 그 오리지널의 이미지를 차마 해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닥스’는 진화시켜야 될 아이템도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듯 보인다.


‘버버리’가 크리스토퍼 베일리를 영입하기 이전, 그러니까 1990년대 후반 처음 임명했던 디자이너 로베르토 멘체티가 했던 파스텔 톤의 노바 체크(버버리 특유의 체크무늬)나 수퍼 노바(노바체크를 크게 확대한 무늬)에서 한걸음도 진화하지도 못한 것이다.


그에 비하면 ‘버버리 프로섬’은 이미 트렌치 코트의 해체를 뛰어 넘은 지 오래다. 모피로 시작된 변화는 다양한 소재 실험, 장식을 덧대거나, 무늬를 넣거나 파스텔 또는 비비드한 색상이 주는 시각적 충격, 실루엣과 구조의 변화까지 트렌치 코트를 변형 시킬 수 있는 방법은 모조리 동원해서 현재에 맞게 진화시키고 있다.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서도 한꺼번에 너무 많은 요소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컬렉션에 따라 소재면 소재, 색이면 색, 장식이면 장식 등 한 가지 요소에 집중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소비자가 이번 시즌 콘셉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버버리’의 매력도를 높인 것은 단순히 컬렉션의 디자인뿐만이 아니었다. 쇼핑백과 브랜드 라벨, 매장 분위기, 광고 사진 등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젊은 트렌치의 이미지로 변화시킨 것도 물론 크리스토퍼 베일리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남았다.


바로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발 빠른 대응, 그리고 그 핵심인 대중과의 소통이 지금의 ‘버버리’로 성장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명품 브랜드 중에서도 ‘버버리’는 특히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매체를 잘 활용하고 빨리 도입하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인터넷을 통해 더욱 서로간의 교류가 활발해진 국제적인 시대에 다양한 문화권과 국가, 전세계인들과 소통하려는 자세는 컬렉션에서 다양한 모델들의 등장으로도 알 수 있다.


‘버버리’ 컬렉션은 백인은 물론 흑인, 아시안, 인도 계열의 모델까지 다양한 인종의 모델이 등장한다.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에게 내가 버버리 옷을 입으면 어떤 느낌이 나겠구나 라고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다.


이렇게 국제적으로 많은 사람과의 소통을 하면서도 놓치지 않는 것이 바로 영국성, 영국적인 것이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정의하는 영국성은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영국에 대한 이미지와 차이가 좀 있다. 그가 생각하는 영국적인 패션이란, ‘불완전한 엘레강스’다.


언뜻 보면 우아하고 세련된 느낌이지만 어딘가 부족해 보이며, 이 불완전함을 채울 수 있는 것이 위트와 새로움이라는 것이다. 마치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모델 ‘케이트 모스’가 그토록 오랜 시간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바로 불완전함의 매력과 같다. 그래서 케이트 모스가 ‘버버리 프로섬’의 모델을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나 보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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