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택 있는 새틴이나 실크, 깊이가 느껴지는 벨벳, 장인들이 짠 레이스는 귀한 옷감 같지만, 왠지 면은 너무나 흔해서 처음부터 일상에서 쉽게 입는 옷이었을 것만 같다. 지금도 비싸고 화려한 소재에 밀려 집에서 입는 실내복으로 전락하기 쉬운 면. 그러나 면도 한 때는 ‘엠마’나 ‘센스 앤 센서빌리티’ 같은 영화에서처럼 귀족들이 멀리서 수입해 입는 고급 소재였다. 얇은 면직인 모슬린으로 된 엠파이어 스타일의 슈미즈 가운을 입은 여성들은 소박하고 청순해 보였다.
사실 어떤 옷감이든 기계로 대량 생산되어 값이 떨어지기 전에는 귀한 대접을 받긴 했지만, 중국에서 수입되던 실크처럼 면도 인도에서 유럽으로 수입되던 비싼 옷감이었다.
온대, 열대 지방이 원산지인 목화를 면으로 짜는 방법은 기원전 3000년 전 인도에서 발생되었다. 목화씨 주위에 난 목화송이를 수확해서 실을 잣고, 그걸로 가볍고 시원한 옷감인 면을 짰다.
18세기까지 인도는 중국과 더불어 세계인들이 소비하는 물건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였다. 인도의 최대 수출품은 면직물이었다. 유럽 귀족들이 사들인 최고급 직물부터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의 거친 작업복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수준의 면직물들이 인도에서 생산되고 수출되어 국고를 살찌웠다.
그 전까지 영국의 전통적인 주력 산업은 모직물이었다. 그러나 동인도회사를 통해 면직물에 대한 수입과 수요가 늘자, 영국 의회는 국내 모직물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인도산 면포(켈리코)의 수입을 금지했다. 대신 인도에서 대량의 면화를 수입하고, 그에 앞서 발명된 방적 기계와 방직 기계를 이용해 대량 생산을 하기 시작했다.
유럽인들이, 특히 노동 계급이 실생활에서 면을 많이 입을 수 있게 된 것은 영국의 이러한 산업혁명 시기 이후이다. 이전에는 아마, 대마 같은 식물성 섬유나 양털로 만든 울 정도가 유럽의 노동 계급이 입을 수 있는 옷감이었다. 1850년 무렵 영국산 면직물은 전세계 총 생산량의 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패션쇼에서 면은 그다지 눈에 띄는 소재가 아니다. 화려한 소재들에 밀려 그들이 더 돋보일 수 있게 받쳐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하지만 면 소재가 단독으로 쓰였을 때의 그 특별한 느낌은 그 어떤 소재로도 대체 불가능하다.
과연 어떤 소재가 면의 깨끗하고 순수한 느낌을 대신할 수 있을까? 더불어 그 실용성은? 면 소재 없는 시대의 속옷과 잠옷은 상상도 하기 어렵다. 새삼 눈에 띄지 않고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세상의 모든 존재에 대해 감사해야겠다.

고학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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