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 36
“지금 나는 내 예술의 정점에 있다.” 축구 선수 지네딘 지단의 말이다. 축구 선수마저도 ‘예술’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하는 곳. 그래서 사람들은 프랑스, 또는 파리하면 ‘예술의 도시’를 떠올리나 보다.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면, 패션도 당연히 그러하다. 파리가 패션의 본고장이 된 것은 역사적으로는 루이 14세의 의도적, 전략적 목적이기도 했지만, 현대 패션계를 구성한 디자이너들에게 이러한 철학이 공유되지 않았다면 과연 파리가 지금까지 패션 도시로써의 위상을 지킬 수 있었을까?
하지만 80~90년대까지 디자이너의 창조성과 예술성을 더 높이 평가했던 시대적 분위기도 21세기가 되면서 거대 자본의 잣대로 평가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LVMH나 PPR, 리치몬트 그룹 등이 여러 명품 브랜드를 소유하게 되고, 긴 역사와 제품력을 바탕으로 디자이너들을 일종의 용병처럼 고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유서 깊은 파리의 브랜드 중에 프랑스인 디자이너가 있는 경우는 드물다.
‘샤넬’의 칼 라거펠트는 독일인. ‘크리스챤 디올’의 라프 시몬스는 벨기에인, ‘루이 비통’을 꿰찬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는 프랑스인이기는 하지만 이제 2014 F/W로 첫 컬렉션을 선보였기 때문에 프랑스인으로 프랑스의 유산을 잘 보여주고 있는지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

높은 판매량과 이슈를 만들어 내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 되면서 패션에는 예술과 디자이너의 철학보다는 경제 논리가 높은 평가를 받는데 고려해야 할 우선 순위로 올라왔다.
이러한 현상은 한편으로는 패션 디자이너의 권위를 무너트리고, 과거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던 패션계 분위기를 깨트린 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매스티지(masstige)’라는 말 자체가 ‘명품의 대중화’를 통한 소비층의 확대였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여전히 프랑스인으로서 프랑스적인 세계관을 유지하고 있는 패션 브랜드가 있다.
이름부터 유서 깊은 프랑스인을 드러내는 장 샤를 드 카스텔바작(Jean-Charles de Castelbajac)이 그 주인공이다.
아직까지 귀족 운운하는 것이 구시대적 발상일지 모르지만, 그의 이름에는 그의 출신 배경이 묻어난다.
프랑스어로 ‘~의’라는 뜻을 의미하는 ‘드(de)’가 붙은 이름은 귀족을 의미한다. 카스텔바작 가문 또한 13세기에 작위를 받은 뒤로 지금까지 이어져온 유서 깊은 프랑스 귀족 가문이라고 한다.
1949년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태어난 그는 대대로 군인이었던 집안 전통에 따라 어린 시절 군사기숙학교로 들어갔다. 5세부터 17세까지 오랜 시간을 규율과 규칙에 얽매인 생활을 하며 군인이 되기를 꿈꿨지만,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테디베어 대신 담요로 만든 코트 에피소드에서 그 안에는 창의력이 잠재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카스텔바작의 컬렉션에 스누피나 미키 마우스 같은 다양한 만화 캐릭터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만화책을 볼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향수 때문이라고 한다.
졸업 후 어머니의 권유로 어머니가 운영하던 패션 브랜드에서 디자인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그는 패션계에 몸을 담은 이래 40여 년이 넘은 세월을 패션계에 종사한 노장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디자인은 여전히 어수룩하고 앳되어 보인다.
그것은 그가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퍼펙트뷰티’, ‘퍼펙트피플’ 등 완벽이란 건 위험한 것이다. 완벽주의자보다 ‘이상한 몬스터’가 되는 편을 택하겠다”라는 말에서 드러난 그의 디자인 철학 때문이다. 노련하거나 완벽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려 하기 보다 항상 호기심 왕성한 아이 같은 모습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2014 S/S 컬렉션은 호기심 많고 예술적 성향을 가진 그의 정체성을 오랜만에 제대로 보여준 컬렉션이었다.
직접 쓴 손 글씨인 듯 옷 전면에 휘갈겨진 시와 마치 아이가 그린 낙서 같은 그림들, 미술시간에 장난쳐 놓은 것 같은 선글라스와 목걸이 등을 선보였는데, 그렇다고 완성도가 떨어져 보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마치 피카소의 작품처럼 순수한 어린아이 같지만 예술가의 경지에 올라있는 것이다.
그의 예술을 표현하고자 하는 정체성에 대한 탐구는 퍼포먼스로도 펼쳐졌다. 백스테이지에서 옷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는데, 미쳐 마르지 않은 물감으로 칠해진 의상을 입은 모델이 런웨이 마지막을 장식했다.
시대에 따라 예술(art)의 의미, 예술로 인정받는 분야와 범위, 향유 계층 등은 바뀌어왔다.
지금은 당연히 예술의 한 분야로 생각되는 그림조차 시대에 따라 현실세계의 모방, 아류에 머무른다 하여 무시당하거나, 건물을 장식하는 하나의 기술 정도로 치부되거나, 살롱이나 단체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낙선작’이라는 타이틀이 붙는 시대 등 지금처럼 예술의 범위가 넓어지는 데도, 대중들과 가까워지는데도 오랜 세월이 걸렸다.
현재 캘리그라피로 불리고 손 글씨, 그래피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길거리 담벼락의 낙서가 이름을 갖고 예술로 인정받게 된 것도 오래되지 않았다.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 카스텔바작, 그리고 그래피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키스 해링 같은 예술가들의 노력이 지금의 대중 명품, 대중 예술 시대를 열었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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