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가와쿠보 (Rei Kawakubo)

이렇게까지 관객을 당혹하게 만드는 패션쇼가 있을까 싶은 ‘꼼 데 가르송’의 패션쇼는 일반적인 패션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한 시즌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팔기 위한 옷이라기 보다는, 어딘가 현대 예술 퍼포먼스를 보는 것 같다. 일반적인 브랜드와는 패션쇼를 하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레이 가와쿠보의 패션에 대한 세계관이 왜 이렇게 형성 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그 당시의 시대 배경을 살펴보자.
40세의 나이에 파리 진출한 그녀는, 젊은 시절을 스타일리스트로서의 활동과 자국에서 론칭한 브랜드를 성공시키며 보내게 된다. 즉, 그녀의 20~30대는 1960-70년대의 일본에서 보냈다. 당시 일본의 시대 분위기는 어땠을까?
1970년, 일본에서는 오사카 만국박람회가 개최됐다. 흔히 줄여서 오사카 만박이라고 불렸던 이 행사는 일본 인구의 60%인 6400백만 명이라는 입장객수를 기록했다. 우리 나라 인구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했으니 가히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불릴만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은 움직이는 도로, 텔레비전 전화, 전자음악, 인간세탁기, 컴퓨터 등 과학기술이 더 발달한 미래에서나 볼 법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사카 만박은 1964년 도쿄 하계 올림픽과 함께 1960년대 일본의 빠른 경제 성장의 상징이었으며, 일본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였음을 과시하는 행사였다.
일본 만화를 좀 본 사람이라면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20세기 소년’에서 이 오사카 만박이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20세기 소년’에 등장했던 ‘친구의 탑’은 실제로 오사카 만박의 상징이었던 ‘태양의 탑’이라는 70m의 거대한 조형물로 존재한다.
그 모습은 만화 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기묘한 이미지를 풍긴다. 일본 경제의 눈부신 발전과 과학 기술의 선진성을 널리 알려야 하는 만국 박람회장에서 도대체 누가 이렇게 엄청난 모험을 할 수 있었을까? 좀 더 엄숙하고, 권위적이며, 한 나라의 힘을 상징하는 형태를 만들었을텐데 말이다.
이미 느꼈겠지만, 이 탑은 실은 오사카 만박을 비웃기 위해 이렇게나 희한한 형태로 만든 탑이었다. 이 탑을 만든 사람이 바로 '예술은 폭발이다' 라는 말과 함께 일본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열정을 불어넣은 예술가, 오카모토 타로(1911-1996)였다.
오카모토 타로는 일본의 피카소로 추앙받으며 일본에 추상화를 뿌리내리게 한 시조같은 인물이다. 18살 되던 1929년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반년 만에 중퇴하고 바로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피카소의 작품에 충격을 받고 추상회화를 시작했으며, 칸딘스키와 몬드리안과 함께 파리 화단에서 활약했다. 모더니즘의 시대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변혁기의 예술에 대한 개념의 변화를 고스란히 경험한 것이다.

그가 1954년에 펴낸 ‘오늘의 예술’은 당시 일본의 미술학도들에게 필독서가 되었다. 제목답게 예술에 있어서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예술을 특정 작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해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예술의 본질은 무엇이고, 예술에 있어 새롭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등 기본적인 예술에 대한 생각부터 예술은 누구나 할 수 있고, 해야 하며, 예술을 어렵다고 느끼게 만드는 미술 교육도 쇄신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작가의 예술론을 담은 이 책의 부제는 ‘누가 시대를 창조하는가’이다.
이러한 타로가 ‘태양의 탑’에 착수하면서 선언한 것은 첫째, ‘바보 같고 터무니없는 것’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타로는 책에서 “오늘날의 예술은 (기술적으로) 잘 만들어서는 안 되며, 아름다워서도, 기분 좋아서도 안 된다”라고 선언했다.
이것은 바로 레이 가와쿠보의 의상을 보면 드는 감정과도 같다.
예술은 숭고해야 한다, 기념탑은 국가의 강성함을 보여줘야 한다는 고정관념들을 그는 깨부수고 들어갔다. 권위, 사람들을 옥죄는 기존의 관념들에 대한 항거였던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을 그는 앞장서 실천한 것이다. 그것은 예술가로의 확고한 자기 확신이 없으면 실천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발달로 삶은 계속 풍족해지지만, 질서와 규율에 묶여 빈곤한 일상을 보내는 왜소해진 현대인을 봤다. 그것은 80년대 레이 가와쿠보가 파리 컬렉션에서 다 떨어진 옷을 선보인 이유와 같았다.
‘태양의 탑’을 세우면서 타로는 반복해서 만박이 하나의 축제가 되길 원한다고 했다. 규제와 절도, 합리주의에 묶인 일상을 뛰어넘어 환상을 체험할 수 있는 열광의 도가니를 만들고자 했다. 국가적으로야 만박의 목적이 과학의 기술과 그 힘을 다른 국가에 과시하고 국민을 계몽하는 데 있었겠지만, 타로가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은 인간 자체, 그 어마어마한 생명력이었다.
국가간의 기술 경쟁을 중시하기는커녕, 기술이 발전하지 못한 나라를 주눅 들게 한 만박의 진보주의적, 근대주의적 의식을 비판했다. “종합하지 마라, 타협하지 마라, 불협화음은 클수록 좋다, 타협하지 말고 화낼 것에는, 투명한 화를 내라.” 타로의 예술관이자 삶의 방식은 ‘태양의 탑’에서도 빛을 발한다.
그것은 고스란히 레이 가와쿠보에게, 새로운 세대에게 예술관 즉,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식된다. 2012년, 꼼 데 갸르송에서는 오카모토 타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오카모토 타로와의 콜래보레이션으로 힘이 넘치는 프린팅의 제품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태양의 탑’이 당시 ‘우유병 도깨비’나 ‘일본의 치욕’이라고 비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만박이 끝나고 지금까지 철거되지 않은 것은 기괴한 형태 뒤에 있는 타로의 개념이 시대를 뛰어넘은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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