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나 가수, 소설가, 영화감독처럼 평생에 걸쳐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는 사람들을 우리는 예술가라고 한다. 그들의 작품 스타일은 생의 변곡점에 따라 변화를 겪기도 하지만, 마침내는 하나의 스타일을 정립하여 사람들에게 기억된다.
예컨대 피카소하면 ‘게르니카’나 ‘아비뇽의 처녀들’ 같은 그림이 생각되지만, 이러한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내기까지 그에게도 ‘청색시대’, ‘장밋빛 시대’라 일컬어지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30여년의 긴 세월이 있었다는 사실은 간과하기 쉽다. 어쨌든 기억되는 것은 입체파 같은 ‘시그니처(signature) 스타일’ 뿐이다.
시그니처 스타일은 일종의 코드나 암호이다. 긴 설명 없이도 서명만 있으면 누구의 작품인지 금방 알아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 작가의 작품 스타일을 사전에 알고 있는 사람에 한해서이다. 시그니처 스타일은 예술가들에게 명예를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기억되는 것은 큰 장점이지만, 항상 새로운 것을 선보여야 하는 예술가에게는 자기자신을 넘어서야 하는 문제를 남기기도 한다.
패션쇼에도 시그니처 스타일이 있을까? 과거 1990년대 패션쇼에서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컬렉션의 마지막 룩을 웨딩 드레스로 하여 피날레를 장식했다. 하얀 드레스와 면사포는 커다란 부피감과 일상복과는 다른 장식성, 새하얀 색이 주는 마무리감까지 더해져 쇼의 대미를 장식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웨딩 드레스 피날레는 어느 한 명의 시그니처 스타일로 불리기에는 너무 많은 디자이너들이 선보인 방식이었다.
컬렉션에서 선보였던 옷을 입은 모델들이 마지막에 한꺼번에 줄지어 워킹하는 마지막 장면도 거의 모든 패션쇼에서 보여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마지막 피날레 장면의 강력한 한방을 위해 새로 제작한 옷들을 입고 단체로 등장한다면?
몇년 전부터 '돌체 앤 가바나'의 피날레 장면이 그렇게 항상 대규모의 모델 워킹으로 웅장하게 끝을 맺었다. 수십명의 모델들은 보석으로 장식된 빨간 원피스나, 금색의 광택감이 있는 소재를 입어 집중도를 높인다. 때로는 수영복 또는 속옷같이 노출이 많은 형태의 아이템을 입은 수십명의 모델들이 마치 파도가 밀려오듯 런웨이를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 나올 때의 그 시각적 압도감은 대단하다.
강렬한 색과 반짝이는 장식, 적당한 노출로 무장한 모델 군단은 어떤 사람이라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돌체 앤 가바나'만의 시그니처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독보적인 피날레이다.
고학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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