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골목길 풍경의 색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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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28 - 조르지오 아르마니 (Giorgio Armani)

2014-01-24 오전 11:29:53

 


 




 



조르지오 아르마니. 1934년생. 올해로 만 79세. 그럼에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세계 최고령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이다. 아르마니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우아함, 실용성, 어깨 패드를 뺀 부드러운 재킷, 편안함이다.


단어뿐 아니라 조르지오 아르마니 하면 떠오르는 색군도 있다. 베이지, 크림, 모래색, 오프 화이트(흰색에 가까운, 희미한 색 기미가 있는 밝은 색의 총칭. 회색 또는 황색을 띤 흰색) 등의 고명도군의 저채도색들, 또는 쿨 그레이에서 웜 그레이까지 다양한 회색 톤, 남색, 검정, 짙은 회색 등의 저명도의 저채도색들이 바로 그것이다. 밝든, 어둡든 저채도, 그레이쉬 톤(grayish tone)이 그를 대표하는 색이다. 그리고 그 색들은 그의 디자인을 중성적이며 한층 우아한 분위기로 만들어 준다. 


아르마니가 이탈리아를 벗어나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1980년,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의 의상을 담당하면서였다. 이 영화에서 그는 부드럽고 젠틀한 리차드 기어의 이미지를 완성해냈다.
하지만 그는 솔직히 말했다. “내게 리차드 기어의 이미지는 어깨 패드를 뺐는지 안 뺐는지 모를 재킷의 형태 때문이었다기 보다, 그가 재킷과 셔츠, 바지, 타이의 색을 매치하기 위해 섬세하게 고민하던 태도와 그 색들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1980년대는 과도기의 시대였다. 여자는 여자답고, 남자는 남자다워야 했던 과거에서 사람들은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렇게 남성과 여성의 고정된 사회적 관념을 깨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을 읽은 아르마니는 남성복에서는 어깨 패드를 빼면서 부드러운 남성성을 강조했고, 여성복에서는 무채색을 사용하여 여성의 중성화를 꾀했다. 이는 당시 여성들의 사회 진출 욕망과 결합되면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런데 왜 아르마니는 초기부터 무채색을 그의 시그니처 컬러로 확고하게 고집하게 되었을까? 이탈리아 여행에서 마주한 골목길 풍경에서 아르마니의 컬러 팔레트가 왜 그렇게 형성되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이탈리아 북부 도시 피아첸차(Piacenza)에서 태어났다. 에밀리아-로마냐 주 북부 포 강 연안에 위치한 피아첸차는 오래된 도시로, 기원전 218년 로마 공화정 시대에 플라켄티아(라틴어: Placentia) 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다.


그 후 로마의 중요한 교통 요지가 되었으며 번영과 쇠퇴를 거듭했고 중세 시대에 대성당이 건립되는 등 전성기를 맞이했었다. 오늘날에는 밀라노와 볼로냐 사이의 주요 도시이며, 북부 이탈리아의 공업 중심지 중 한 곳이다.


이탈리아 북부의 동네 풍경은 붉으스름한 벽돌과 기와, 누르스름한 사암과 석회암의 회백색, 그리고 빛바랜 페인트의 벽들이 어우러져 고풍스러우면서 따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확실히 19세기 도시 정비로 거듭 난 파리와는 다른 색감을 갖는다.


그것은 당연히 이탈리아 지방에서 난 건축 재료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토양은 흑갈색 포드졸토(土)로 강우량이 많은 100m 이상의 알프스 지역에 분포한다. 이탈리아 반도를 세로로 지나는 아펜니노 산맥에는 포드졸화된 갈색토양이 삼림과 목초 지역에 덮여 있다. 또한 갈색의 지중해성 토양도 있어 농경에 적합하다.


특히 테라로사는 석회암 적색토로 남부의 풀리아와 베네치아 등지에서 포도·올리브 경작에 이용된다. 철분을 함유한 점토로 구성된 적색양토(페레토)도 있다. 그밖에 알프스 산지의 산록지역은 적색양토가 주종을 이룬다.


또한 건축 재료와 비료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북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석회·백악과 화강암·대리석의 채굴업이 꾸준히 성장했다고 하니, 불그스름하거나 회색의 건축물들이 이탈리아 북부 도시의 골목길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은 자신이 자라온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무의식 속에 저장되어 그 사람의 미감이나 취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환경이란 자연이 될 수도, 동네 골목길 풍경이 되기도 한다.
특히 도시의 사람들은 산이나 바다 같은 자연보다, 그 자연에서 나온 재료로 만들어진 건축물에 더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아르마니가 보고 자란 동네 풍경도 그렇게 그의 무의식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건축 재료와 건축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건축기술의 근본이 된다. 건축 재료는 인류 역사상 각 시대별로 그 문화와 지리적인 조건에 따라 달라졌으며, 또 그 구성방법과 기술도 달라져 시대 특유의 건축양식을 낳게 되었다.


더군다나 운송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는 그 지방에서 산출되는 자연 재료가 건축에 사용되는 절대적인 재료로서 건축의 지역적 특징을 나타내게 되었다.
이 시대에는 각 지방마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천연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절대적이었으므로, 그 지방에서 건축에 사용한 재료는 그 시대성 및 지방성을 잘 반영하여 저마다의 특징을 나타내게 된다.


오래 된 이탈리아 골목길의 색이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대표하는 색이 된 것도 놀랍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중성 색들이 오히려 여성의 피부톤을 더 아름답게 보이도록 도와준다는 점이다. 사실 중성 색들은 고채도의 선명하고 화려한 색들에 비하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색이다.


그러나 인간의 피부색 또한 뭐라고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오묘한 색이다. 빨강, 노랑으로 만들어진 주황이 밝거나 어두워진 것이 피부색인데, 이렇게 복잡하게 형성된 저채도의 피부에 출처를 더 알기 어려운 중성 색들이 매치되면, 오히려 피부는 화사해 보이고 우아해 진다. 아르마니는 동네 골목길에서 우아함의 색의 원리를 찾은 것이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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