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의 희생자를 위한 진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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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 27 - 앤 드뮐미스터 (Ann Demeulemeester)

2014-01-17 오후 5:05:01

 



고문은 사람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든다. 내가 한 일이 아닌 일도, 사실이 아니었던 일도 권력의 힘 앞에서 속절없이 한 일로 둔갑된다. 영화 ‘변호인’의 고문장면처럼 말이다.


고문이 개입되어 왜곡된 사건들은 뒤돌아 보면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된다.
마녀사냥 또한 유럽인들에게는 어쩌면 밝히고 싶지 않은 어두운 과거일지 모른다. 그러나 숨기기에는 너무 오랜 기간,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서 벌어진 잔인하고, 끔찍한 역사다. 시기적으로는 14세기 중반부터 17세기 말, 학자에 따라서는 18세기 중엽, 심지어는 1970년대까지도 마녀사냥의 흔적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정확한 기간이야 어찌되었든 300년 이상 지속되면서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마녀사냥이란 수많은 사람들(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이 마녀술을 부린다는 혐의로 고소를 당하고 재판을 받고 처형된 사건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마녀사냥은 왜 일어났는가? 중세인들의 무지함이나 아직 발달하지 못했던 이성, 다시 말해 맹목적인 종교적 믿음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단순한 접근이다. 그것은 중세라는 시대가 변화하면서 사회, 정치, 종교, 경제, 문화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발생한 현상이었다.


마녀사냥의 정의에서 깊이있게 살펴볼 것은 ‘마녀술’, ‘고소와 재판’, 그리고 ‘처형’이다. 지금의 시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마녀술’이라는 비이성적 이유가 사회적으로 용인되었던 것은 이성적으로 들여다 보면 그 안에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마녀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지식으로 일상사의 궂은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과학 발달이 미진했던 중세 사회에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흔히 마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이런 상황에서 마술이 관장할 수 있는 영역은 아주 포괄적이었고, 마술을 부릴 수 있는 사람들은 공동체에 필요한 구성원으로 오랜 시간 평화롭게 타인들과 공존했다.


그런데 이 마술이 처벌의 대상이 되고 거대한 박해가 일어난 것은 종교와 경제적 이득이 맞물리면서 권력층이 ‘악마론’이라는 거대 논리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전해지던 민간 의술이 존재했다. 주술적인 개념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민간 의술은 약초에 대한 지식과 인체에 대한 지식, 그리고 출산에 대한 지식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동양의 의학처럼 약초학의 일종이었다.
이러한 약초 지식을 지닌 사람을 위카(Wicca)라고 불렀다. 이는 고대 영어로 ‘현명한 여자’라는 뜻이다. 이후에 이것은 마녀를 지칭하는 위치(Witch)의 어원이 된다.


12세기에 이르러 서양 의학이 크게 발전하고 기독교가 유럽을 잠식하면서 교황은 교회의 승인 없이 치료 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한다. 중세 시대에는 학문의 중심이 교회와 수도원이었기 때문에 서양 의학을 배운 의사는 대부분이 성직자였다.
이런 성직자들에 의해 치료 행위가 이루어졌고, 이것은 곧 교회의 큰 수입원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약초학에 의존했고, 약초학에 정통한 산파를 불러 아기를 낳았다. 이에 교황청은 의사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교회의 의료 수입을 늘리려는 목적으로 교회의 승인 없이 행해지는 치료 행위를 금지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신의 대리자인 교황이 발표한 칙령은 곧 신의 말씀이었다.
이를 거역한다는 것은 곧 신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었고, 이는 곧 이단 행위가 된다. 이것이 마녀의 탄생 지점이다.


당시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여인들이 생계를 위해 약초학을 배워 치료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약초학의 지식을 지닌 치료사 대부분이 40세 이상의 노파(당시 평균 수명 기준으로)였다.
약초학에 정통한 노파들은 중노동을 하는 농가의 여인들에 비해 수명도 길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등 구부러지고 이빨 다 빠진 마녀의 모습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마녀’가 정의되자 이 마녀를 처벌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들도 등장했다. ‘고소와 재판’은 인권을 위한 안전장치여야 했지만, 중세 사회에서는 오히려 특별 재판소의 설립과 법적인 고문의 시행으로 마녀사냥을 참혹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당시에는 이탈리아 법학과 캐논법을 통하여 유럽 여러 나라가 이른바 규문주의(糾問主義) 소송절차를 채택하였다. 규문주의란 법원이 스스로 절차를 개시하여 심리·재판하는 주의를 말한다. 이는 심리 개시와 재판의 권한이 법관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 특색이 있다. 법전에 근거한 판단이 아니라 법관의 말이 곧 법이 되는 것이다.


이 소송절차에서는 고문이 합법화되었다. 고문은 거의 모든 마녀재판의 필수적인 요소로 등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마녀로 지목되면 끔찍한 고문에 지레 겁먹고 자신이 마녀라고 거짓 자백하게 되었다. 마녀는 바로 이 고문의 소산이었다. 


마녀로 판단된 사람들이 ‘처형’이 되는 과정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마녀사냥이 단순히 종교적원인이 아닌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마녀로 몰린 이들은 죽은 후에 재산을 몰수당했기 때문이다.
체포에서 처형까지 소요되는 경비, 고문 수수료, 감옥 유지비, 목맨 밧줄 값, 화형에 사용된 장작 값, 기름값, 심지어는 하급관리들의 급료나 일당, 재판관의 여비까지 피고가 부담해야 했다.


이런 이유에서 마녀사냥의 목적이 재산몰수를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추측을 낳기도 한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실제로 마녀로 몰린 이들의 적지 않은 수가 돈 많은 과부나 독립한 여성들이었다.


마녀사냥의 흔적은 아직까지 유럽의 문화 곳곳에 남아있다. 앤 드뮐미스터의 컬렉션이 마녀사냥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영혼들을 기리는 레퀴엠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또한 부끄럽지만 잊지 말아야 할 그들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학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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