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정 또는 하얀 색, 안개 낀 북유럽 날씨를 연상케 하는 음울한 분위기, 무엇인가 사건이 벌어질것을 암시하는 듯 어둡고 숙연한 인상. 브랜드 ‘앤 드뮐미스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앤 드뮐미스터’의 디자인은 매 시즌 새로운 영감에 따라 스타일이 확확 바뀌는 브랜드와는 다르게 일관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왔다. 이러한 ‘앤 드뮐미스터’의 디자인을 감히 ‘고딕 스타일’이라고 정의해 보고자 한다. ‘고딕 스타일’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누군가는 레이스가 잔뜩 달린 일본식 ‘고스 로리’ 스타일을, 누군가는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의 등장인물들처럼 온 몸을 감싸는 새까만 옷들을, 누군가는 마릴린 맨슨의 기괴한 분장을, 또 어떤 이는 중세 유럽의 고딕 건물이나, 동유럽의 드라큘라까지 연상하는 이미지가 다양하다.
이렇게 고딕 스타일이 다양하면서도 공통된 분위기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은 그만큼 ‘고딕’이 대중화 된 단어라는 뜻이다. ‘고딕’과 ‘대중’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고스족은 하위문화 아닌가? 그렇다면 고스족과 고딕 스타일은 어떤 관계인가? 과연 고딕 스타일은 특히 패션에서 어떤 스타일을 말하는 것일까? 점차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결론적으로 ‘고딕 스타일’은 처음부터 대중 지향적이었으며, 특히 소설 분야에서 오랜 기간 독자층을 확장해 온 장르임을 밝힌다.
우선 고딕과 관련 된 단어들의 용어 정리부터 해보자.



‘고딕’의 기원이 되는 고트족(Goths)은 5세기 경 로마 문명을 몰락시킬 정도로 막강한 민족이었으며, 후에 서고트, 동고트 왕국을 세운다. 그러나 후대인들에게 로마 문명이 이룩한 문화적 업적을 무력으로 뒤엎은 야만인, 미개한 민족으로 비춰졌다.
이 같은 도식화는 미개와 문명, 야만과 문화라는 이분법을 탄생시켰고, 이것이 ‘고딕’이라는 단어가 역사적으로 이해되어온 방식을 구조화 했다. 그러나 고트족은 지금의 ‘고딕 스타일’에 어원만 제공했을 뿐 현대의 고딕 이미지나 스타일과는 전혀 다르다.
이후 ‘고딕’이란 단어는 중세의 건축 분야에서 사용되었다. 12세기 중반 북프랑스에 고딕 양식의 교회당이 차례로 세워지기 시작했을 때도 ‘고딕 양식’이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았다. 당시의 관계자들은 이를 ‘현대 양식(Opus Modernum)’이라고 불렀고, 13세기 독일 연대기 작가는 ‘프랑스 양식(Opus Fracni genum)’이라고 표기했다. 처음으로 고딕 양식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15~16세기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 교양인들이었다.
그들은 알프스 이북에서 전파된 대건축의 양식을 이탈리아어로 고트인의 양식(Gotico)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말에는 멸시가 담겨 있었다. 즉, 알프스를 중심으로 북유럽의 고딕 문화와 이탈리아의 로마네스크, 르네상스, 비잔틴 문화의 대립이었다. (사진 1. 로마네스크 vs 고딕 양식)
하지만 결국 북유럽에서 발생한 고딕 양식은 르네상스 양식이 부흥하기 전까지 이탈리아까지 그 영향력을 끼쳐 많은 고딕 양식의 성당들을 유산으로 남겼다. 이후 바로크, 로코코 양식으로 사그라 들었던 ‘고딕’이라는 표현은 17세기 영국에서 중세 교회건축의 양식을 회고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다시 등장했다. 수직, 수평의 반듯하고 투박했던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에 비해 뾰족하고 높아 기괴한 느낌을 주는 과장된 형태, 괴물 모양의 물 배수구, 길고 뻣뻣한 인물상, 정교한 세부 묘사 등이 나타났다. 고딕 양식은 북유럽의 가장 큰 특징이었고, 이탈리아와는 차별화되는 미감을 보여주었다. 야성적이고 환상적인 형태들을 통해 옛 고트족의 야만성이 로마 문명을 파괴했던 역사를 되풀이한다는 점에서 최초의 고딕 복고이기도 했다. (사진 2)
이들을 다시 부활시킨 것은 18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예술가들이었다. 그들은 죽음, 어둠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어 공포스럽고 기괴한 분위기의 소설들을 써냈다. 대영제국의 전성기였던 빅토리아 시대는 강한 종교적, 도덕적 절제가 요구되었던 시대였다.
억제된 인간 욕망은 문학과 예술을 통해서 표현되었다. 예술가들은 가치 없는 것으로 무시되었던 고딕문화에서 자유를 찾았다. 이들은 억눌린 사회분위기에 반항하며 어둠과 공포에 탐닉하고 마녀와 드라큘라 같은 고딕의 잔재들에 관심을 기울였다. 고딕소설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브란스토커의 ‘드라큘라’는 이런 배경하에 탄생했다.
18세기 후반 고딕 소설의 등장으로 고딕의 의미는 또다시 변형된다. 마침내 축복받은 계몽주의가 도래하고 인류가 과학과 이성의 혜택을 누리기 이전, 야만과 봉건주의가 판치던 시대를 가리키는 단어가 되기도 했다.
계몽주의는 유령의 존재를 오락거리로 전환시킬 수 있었던 사회였으며, 고딕 소설이 등장하자 문학 시장에 전에없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세기에 이미 소설 속 인물을 이용한 무수한 종류의 상품의 판촉행사가 벌어진다. 때문에 대중오락이라면 덮어놓고 폄훼하는 문학적 엘리트주의자들에게 비평적 속물성의 표적이 되었다. (사진 3)
20세기에 들어와 ‘고스’는 다시 한 번 복고된다. ‘고스족’은 1970년대 말 펑크족에 대한 반발로 생성된 아웃사이더로 18세기 빅토리아 시대로의 회귀를 꿈꾸는 사람들을 칭한다. 빅토리아 시대에 재발견된 고딕문화를 현대에 다시 부활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은 중세의 물건(갑옷, 무기)을 모으고, 죽음과 함께 산다. 유행과는 상관없이 그들만의 가치를 고집하며 그들만의 직업, 클럽, 숍을 가지고 비밀스런 생활을 유지하려 한다.
이런 식으로 기성 문화에 의문을 던지며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 ‘고스족’들이 하위 문화로써의 고딕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사진 4)
인간 삶의 어두운 부분-죽음, 범죄, 광기, 도착, 강박적 욕망, 초자연적인 것과 비의적인 것-에 대한 집착은 때로 세기말적 현상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21세기로 넘어온 시점에서 수많은 드라큘라나 좀비, 공포 영화가 쏟아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고딕은 주류시장과 틈새시장의 구분을 막론하고 상업화되었다. 영화와 소설 뿐 아니라 패션, 인테리어, 컴퓨터 게임, 청년문화, TV에까지 등장한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매력적이고 잘 팔린다는 뜻이다.
1990년대부터 앤 드뮐미스터의 패션이 전세계적인 매니아를 거느리게 된 것도 이런 고딕 역사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닐까.



고학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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