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 앤디 워홀, 피카소까지 현대 예술로 명품 패션을 관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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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23-라프 시몬스

2013-12-13 오후 2:31:07


 

둥그런 보울러 햇을 쓴 수많은 신사들이 하늘에 떠있는 ‘골콘다’, 버젓이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 놓아 혼란을 주는 그림, 비현실적인 하늘색의 하늘과 하얀 구름, 방안을 가득 채운 커다란 사과나 장미꽃하면 떠오르는 화가가 있을 것이다. 바로 초현실주의의 대가, ‘르네 마그리트’다.
 
르네 마그리트는 벨기에 출신으로 1920년대 후반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가하였는데, 사물을 의외의 배경과 결합시킴으로써 뜻밖의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데페이즈망’ 기법으로 합리적인 의식을 초월한 무의식의 세계를 선보였다. (사진 1)


‘질 샌더’에서 ‘크리스챤 디올’로 자리를 옮긴 라프 시몬스는 2013 F/W쇼에서 자국이 배출한 초현실주의의 대표 작가인 르네 마그리트로 프랑스 대표 브랜드 ‘디올’의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런웨이 바닥에는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핀 하늘이 펼쳐졌고, 거대한 은색 구에 그 하늘이 비쳐져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사진 2)






하지만 라프 시몬스가 벨기에의 유산만으로 패션으로 풀어내는 것은 아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무대는 르네 마그리트로 꾸며놓고 옷에는 다른 현대 예술작가의 작품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는 바로 ‘앤디 워홀’이었다. 팝아트나 실크스크린으로만 알려진앤디 워홀이 젊은 시절 패션 잡지 하퍼스 바자나 보그를 위해 패션 일러스트를 그렸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사진 3)


앤디 워홀 시각예술재단의 제안으로 앤디 워홀이 그렸던 구두나 속눈썹 같은 패션 아이템은 라프 시몬스를 만나 ‘크리스챤 디올’의 옷 위에 얹혀졌다. 새로운 구조의 의상에 섬세하게 프린트 된 무늬와 그 무늬를 따라 각종 모양의 시퀸과 금박으로 반짝임을 더해 초현실성은 더욱 강화되었다. (사진 4)







라프 시몬스는 질 샌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절 피카소의 작품을 스웨터로 옮기기도 했다. (사진 5) 대중들에게 흔히 알려진 회화 작품이 아닌, 피카소가 만든 도자기에 그려진 얼굴에서 가져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사진 6)


1차원적으로 생각해 보면 예술 작품을 패션에 접목시킬 때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작품을 사용해야 더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아직까지 ‘입 생 로랑’의 몬드리안 드레스나, ‘반고흐’의 해바라기 수트가 패션사에 회자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라프 시몬스는 예술가들의 대표작뿐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패션으로 끌고 온다. 그리그 그 결과물이 너무도 훌륭하다. 어쩌면 그는 큐레이터처럼,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을 발굴해 사람들에게 다시 새롭게 선보이는 역할을 자청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라프 시몬스가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면서 그 스스로 무슈 디올과의 연관성을 찾고자 했다고 한다. 사실 프랑스인과 벨기에인으로 국적도 다르고, 또한 겉으로 드러나는 디자인적 성향도 너무 달랐기 때문에 ‘디올’을 끌고가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마침내 라프 시몬스는 무슈 디올이 옷을 만들기 전인 1928년 갤러리를 열고 조르조 데 키리고, 모리스 위트릴로, 살바도르 달리, 조르주 브라크, 페르낭 레제 등의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얻는다.


사실 라프 시몬스도 현대 예술에 해박한 디자이너로 알려졌고, 그간 그가 선보인 의상들도 단순히 트렌드를 보여주는 의상들이 아닌 현대 예술사조나 예술 작품에 가까운 실험을 패션에서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프 시몬스의 옷이 특별해 보였던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옷을 단순히 인간의 사회활동과 몸을 보호하기 위한 옷으로만 보지 않고, 화석화 된 개념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시도. 바로 예술가들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와 같았다.


그는 재료 실험을 통해 그간 옷에서는 보지 못했던 생경한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해낸다. (사진 7) 인위적인 광택감이 있는 소재와 빳빳하면서 은은하게 안이 비치는 소재는 그가 시각적인 효과를 위해 자주 사용하는 소재이다. 투명하면서도 광택감있는 소재는 옷 위로 전자파나 자기장이 흐르는 듯 유동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무지개빛을 반사하는 포장지같은 소재는 주름과 볼륨감이 더해져 보석처럼 아름답다. 보통은 디자이너들이 싸구려 코스튬 의상처럼 보일까 꺼리는 소재들로 라프 시몬스는 고급 의상을 완성해 냈다. 






새로운 구조 실험도 라프 시몬스가 끊임없이 선보이는 주제이다. (사진 8) 그의 구조 실험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겉과 안 구별의 모호함, 요철, 그리고 구조적인 디자인이다. 이 세 가지 주제는 현재 활동하는 아방가르드한 디자이너들에게서 지속적으로 실험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첫번째는 겉옷과 안의 옷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겹쳐입은 듯 한벌인 의상들이다.


이 콘셉의 핵심인 모호함을 잘 살리기 위해서는 색을 잘 사용해야 된다. 색이 너무 많아지면 그냥 혼란스러운 디자인이 되기 때문에 2가지, 많아도 3가지 색을 넘지 않아야 한다. 옷에서의 요철도 2000년대 이전까지는 잘 시도되지 않았던 형태다. 마지막으로 구조적인 디자인은 옷으로서 단단한 형태를 유지하여 그 자체의 존재감이 큰 의상들이다.


이 모든 라프 시몬스의 실험이 무슈 디올의 꽃에 대한 사랑과 합쳐져 총체적으로 보여준 것이 이번 2014 S/S ‘디올’ 컬렉션이었다. 그 자신의 개성도, 무슈 디올 정체성도 놓치지 않은 성공적인 컬렉션이었다.



고학수 전문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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