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가 있다. 전 세계 국가를 한 반의 아이들 캐릭터로 비유했던 것이다. 그 중 ‘미국이’는 반장이었다. ‘공부도 잘 하고 싸움도 잘 하며, 게다가 집도 부자라 반 아이들이 설설 긴다. 하지만 반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에까지 참견해서 뒤로는 욕을 많이 먹는다.
최근에 한 학생(이라크)가 꼬투리 하나 잡혀서 엄청 맞았다’는 식으로 세계 정세 속에서 각 나라의 힘에 따라 설정된 캐릭터들이 웃음을 자아냈다. 덧붙이자면 ‘남한이’는 숫기 없고 말도 별로 없어 눈에 그다지 띄지 않지만 체육 시간에 축구 한판 하고 나면 달라지는, 미국이와 친하지만 일란성 쌍둥이 동생(북한) 때문에 눈치를 많이 보고 있다는 캐릭터였다.
미국은 이렇게 드라마 속 학급 반장 같은 이미지였다. 모든지 잘 하고, 잘 났고, 세계 최고인 아름다운 나라, 동경의 나라였다. TV로, 영화로 마주치는 미국은 풍요롭고, 모든 새로운 문화가 시작되는 곳이었다. 특히 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난 아버지 세대와 그 자녀들에게 미국은 기회의 땅으로 인식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에 의해 세계의 평화 질서가 유지되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상황은 영원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불과 70여년 만에 세계는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고, 그에 따라 미국의 위상도 달라지고 있다.

2001년 9.11테러 이후로 중동과 미국의 적대적인 관계는 끊임없이 매체로부터 시각화 되어 전달되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 카에다 및 이슬람 테러 조직의 소행으로 결론 내린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빈 라덴을 숨겨줬다는데 대한 보복으로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다.
2003년, 뒤이은 이라크 전에서 미국은 비(非) 중동 사람들에게 중동 지역 전체를 하나의 테러 집단으로 이미지화시켜 그 공격의 정당성을 인식시키고자 했다. 전쟁 초에는 테러와의 전쟁이라고 홍보하다가, 후세인 정권이 보유한 대량 살상 무기, 생화학 무기의 위험성을 경고하다가, 마지막에는 후세인 정권 아래 고통 받는 이라크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한 오일 전쟁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라크 전은 모두가 알다시피 중동의 석유를 두고 벌인 전쟁이자, 탈 냉전시대에 미국이 국제 질서에서의 패권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들이 공공연히 퍼졌다. 그렇기 때문에 아랍권의 극단적인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2010년 여전히 TV로만 접하는 세계인 중동에서,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일련의 사건들이 발발했다. 아랍의 봄(Arab Spring)은 2010년 말 튀니지에서 시작되어 아랍 중동 국가 및 북아프리카로 확산 된 반 정부 시위를 일컫는다.

21세기를 넘어서도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독재 정권과 철권 통치로 집권세력의 부패가 계속 되자, 빈부 격차, 청년 실업으로 인한 젊은이들의 분노 등이 촉발된 유례 없는 반정부 시위다.
튀니지의 반정부 시위는 2011년 1월 재스민 혁명으로 번졌고, 이집트는 2월 코사리혁명으로 각각 정권교체에 성공했으며, 리비아에서는 10월 무아마르카다피(Mua mmar Qaddafi)가 사망함에 따라 42년간 계속된 독재정치가 막을 내렸다. 알리 압둘라살레(Ali Abdullah Saleh) 예멘 대통령이 11월 23일 권력이양안에 서명함에 따라 33년간 계속돼 온 철권통치가 막을 내렸다.
21세기 초 미국과의 전쟁과 ‘아랍의 봄’으로 중동은 전 세계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끊임없는 전쟁, 난민들, 미군과 반군, 폭격, 울부짖는 사람들, 대규모 집회, 시가지의 탱크, 화약 등 마치 영화 같은 장면들은 뉴스를 타고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생중계 되었다.
‘마치 영화처럼’. 이것이 아랍 사회에 대한 비아랍권 사람들의 시각의 문제이다. 민간인들이 죽어나는 전쟁이, 반정부 시위가 단순히 할리우드 액션 영화 같은 임팩트 밖에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제레미 스캇이‘아랍의 봄’을 주제로 선보인 2013 S/S 컬렉션 역시 한없이 가벼워 보인다.
백인 모델 없이 진행된 이 컬렉션은 대중들이 표면적으로 알고 있는 아랍의 이미지로 버무려졌다. 중동의 여인들처럼 온 몸을 가리는 큰 천, 총으로 장식 된 의상, 오일 머니를 상징하는 듯한 금붙이들, 1달러, 호피, 뱀피 등의 가죽 무늬, 반짝이는 금빛 의상, 반군들의 선글라스 같은 이미지들로 채워졌다.
이번 가을은 특히 미국에 악재가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미국 국가안보국이 세계 정상들의 통화를 도청했다는 의혹으로 적대 관계의 국가뿐 아니라 우방국들에게도 강한 항의를 받고 있는 상황이며, 며칠 전 미국 연방정부의 일시 폐쇄(shutdown) 사태로 공무원들에게 실시된 강제 휴무는 미국의 소비 심리위축에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반장 역할을 하던 미국의 신용이 하락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불안하고 막연한 미래에 안정적이었던 투자처였던 미국 국채와 국제 무역과 금융 결제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던 달러화의 힘도 예전만 못하다.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과 디폴트 우려로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자 중국의 위안화의 몸값이 사상 최대치로 치솟는 반사이익을 보기도 했다.

모든 위기의 발단은 미국의 재정적자다. 경기침체와 금융위기로 가난해진 미국은 외교 무대에서도 ‘늙은 호랑이’가 돼가고 있다. 국방예산 삭감으로 외교력은 물론 정보력까지 타격을 입었다. ‘아랍의 봄’ 후폭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동과 이란의 핵 문제에서도 입김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미국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미국의 영광이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는 것일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괴로운 일일 테다. 그래서 제레미스캇은 더욱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가 보다.
고학수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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