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버리 힐빌리즈(Beverly Hillbillies)라는 영화가 있었다.(사진 1) 미국 어느 두메산골에 살던 홀아비 제드는 어느 날 토끼 사냥을 하다가 우연히 유전을 발견하게 되어 하루아침에 억만장자가 된다. 선머슴같은 딸 엘리메이를 여자답게 키워보고자 상징적인 부자 동네 비버리 힐즈로 이사오게 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코미디였다.
사실 베버리 힐빌리즈는 1962년부터 1971년까지 오랜 기간 미국에서 인기있는 TV 시트콤이었는데, 1993년 영화로 제작되면서 미국인들에게 공유되던 미국 시골뜨기의 모습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힐빌리즈라는 캐릭터의 상징성 때문에 바비 인형에서 수집용 바비로 제작되기도 할 만큼 잘 알려진 이미지가 되었다. (사진 2)
이 영화에서 독특한 억양의 미국 사투리와 피들러(fiddler: 특히 민속음악을 연주하는 바이올린 연주자)의 흥겨운 음악은 미국의 시골 분위기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미국의 중부 산악지대에 사는 농민이나 나무꾼에 대한 명칭(산사나이·시골사람)이자, 이 지방에 전하는 민요, 사투리의 억센 창법이 바로 힐빌리(즈)이다.
이는 컨트리송의 한 타입으로 1930년대에 방송을 타고 민속풍의 음악으로 인기를 모았고, 50년대에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르는 스타일을 로큰롤(rock'n'-roll)과 합성어로 만들어 로카빌리(Rockabilly)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렇듯 미국의 지방 소도시, 시골, 컨추리 음악 등은 데님과 카우보이 모자와 함께 떠오른다. 「제레미 스캇」의 2012 S/S 컬렉션에서는 이렇게 차가운 도시 뉴요커가 아닌, 미국의 중부의 드넓은 평원과 사막, 또는 산악지대에 살고 있는 또 하나의 미국인 이미지를 표현했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뉴욕 컬렉션에서 지극히 ‘뉴욕’적인 도시의 현대 여성을 위한 옷을 만들 때, 제레미 스캇은 전 세계인들이 ‘미국’이라고 공감하는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다. 그 표현의 소재를 데님으로 했다. 데님 소재의 바지는 물론, 원피스, 재킷, 치마 등으로 다양하게 변형되었다. (사진 3)
데님 소재는 프랑스에서 탄생했지만 그로부터 탄생한 청바지는 어쩌면 미국의 전통 복식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데님은 17세기 프랑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실크와 양모를 능직으로 짠 서지 직물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서지 드 님(serge de Nimes)’을 그 기원으로 보고 있으며, 데님소재가 영국에 처음 소개될 때 영어를 쓰는 무역상들에 의해 ‘데님’이라는 약어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렇게 유럽에서 시작된 데님이 어떻게 미국, 특히 남부와 서부를 연상시키는 대표 아이콘이 되었을까?
세계 최초의 청바지는 1873년 의류 도매업자 레비 스트라우스와 재단사였던 제이컵 데이비스에 의해 탄생했다. 독일 출신의 스트라우스는 18세가 되던 해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뒤 당시 골드러시가 한창이던 서부의 샌프란시스코에서 1853년 자신의 의류 도매점을 열었다. 샌프란시스코 광원들이 보다 질기고 튼튼한 재질의 작업복 바지를 원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그는 당시 갈색 캔버스 천을 이용해 바지를 만든 뒤 이것을 푸른색의 인디고로 염색해 판매했다.
그가 고안한 바지의 주머니는 광원들의 작업도구 등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자주 터졌고 스트라우스의 고객이었던 재단사 데이비스는 구리 리벳으로 주머니의 접합 부분을 단단히 고정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스트라우스에게 제안했다. 두 사람은 1873년 미 특허청으로부터 특허를 얻어 이것이 리바이스(Levi’s)의 시작이 되었다.

서부 개척시대와 1929년 대공황을 거치며 청바지는 ‘끈기’ ‘강인함’ 그리고 ‘힘’이라는 상징과 절망적인 시기를 꿋꿋이 견뎌낸 노동자들의 유대감을 얻는다. 대공황을 극복한 미국은 새로운 영웅으로 ‘청바지를 입은 카우보이’를 선택했다. 그러자 청바지 브랜드들도 브랜드 이미지를 웨스턴 스타일, 카우보이에 접목했다. 카우보이에 대한 우상화는 서부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그 후 전쟁이 발발하면서 청바지에는 ‘애국심’이라는 상징도 덧붙여졌으며, 전쟁 후에는 전쟁에서 겪은 심리적 상처에 대한 보상심리로 좀 더 자유롭고 즐거운 것을 찾는 이들로 인해 바이크 인구가 늘기도 했다. 검은 가죽과 데님은 우렁찬 소리를 내뿜으며 달리는 라이더의 상징이 되었다.
이렇게 청바지는 미국의 역사와 함께 많은 문화적 이미지를 지녔다. 1975년 미주리주의 캔자스 시티에서 태어난 제레미 스캇은 이렇게 함축적인 의미의 미국의 청바지와 함께 떠오르는 미국의 다양한 이미지들을 표현하는데 한 컬렉션을 할애했다.
남부 평원의 젖소 목장에서 소를 모는 카우걸과 카우보이가 눈에 띈다. 그러나 이전까지 보편적으로 형성되었던 카우보이 이미지와는 많은 차이가 난다. 카우보이 룩이라면 으레 생각하는 모자나 체크무늬 셔츠, 네커치프를 뺀 조끼와 챕스와 속옷만 착용한 모습이다.
가랑이가 뚫린 이 요상한 바지는 원래는 가죽으로 제작되는 챕스(chaps)인데, 청바지 위에 겹쳐 입는다. 바짓단이 날리거나 먼지나 뾰족한 나무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제레미 스캇은 일부러 셔츠와 바지를 없앰으로써 상체와 하체를 노출시켜 야하고 민망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일부러 까만 가죽으로 제작한 그의 B급 정서를 유감없이 드러난다. (사진 4,5)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끝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라이더와 황량한 사막을 지키는 보안관 역시 미국 이미지를 만들던 랄프 로렌의 스타일과는 많이 다르다. 그는 의도적으로 이미지를 가벼워 보이도록 노력한다. 오락실용 오락기 화면 같은 그래픽적인 선인장 패턴은 주황색, 연두색, 분홍색 같은 캔디 컬러와 인조 페이턴트처럼 저렴해 보이는 소재로 표현하는 식이다. (사진 6,7,8)

건강미와 백치미가 흐르는 금발의 백인 여성들은 캘리포니아 해변으로 가서 선탠과 운동을 즐기도 했다. (사진 9) 제레미 스캇의 의상이 팝 가수들에게 인기 많은 것은 이렇게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는 컬렉션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학수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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