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년이 넘도록 이어져 온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패션 행적은 그녀의 인생 그 자체이며, 현대 영국 패션, 영국을 넘어 세계의 젊은이의 패션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녀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그녀의 컬렉션을 보면 깜짝 놀라겠지만, 앞서 살펴본 그녀의 흔적을 보면 모든 것이 축적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일반적으로 가장 놀랄 수 밖에 없는 기괴한 화장부터 살펴보자. 이는 2-3년 전 컬렉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정신은 ‘왜 그래야만 하는가’라고 할 수 있다. 왜 여자들은 아름다워 보이도록 화장해야만 하는가?
홍조 띤 앳된 얼굴을 위해 볼터치를 하고, 눈을 크게 보이거나 섹시해 보이려 마스카라와 온갖 섀도우로 애쓰며, 입술 색은 트렌드에 따라 비슷한 듯 매번 새로운 색으로 칠해진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이것은 뷰티 업계의 상술은 아닐까? 또는 이 모든 것이 남성에게 사랑받기 위한 것이라면, 아예 얼굴에 하트를 그리는 건 어떨까? 화장이라는 것이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면, 피부색 자체를 초록색이나 주황색으로 바꿔볼 수도 있고, 또는 먼지를 뒤집어 쓰거나, 낙서를 하거나, 멍이 든 것처럼 표현할 수도 있다. (사진 1)

1980년대 서양복의 해체주의로 패션계가 한바탕 뒤집어졌다면,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21세기에 화장의 해체주의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의 질문은 웨딩드레스에도 나타난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홈페이지에는 브라이덜 라인이 따로 있으며, 온전히 주문 제작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대개 레드 라벨 컬렉션 마지막에 선보이는 웨딩드레스는 공주풍, 여신풍으로 굳이 이미지를 분류하자면 유령 신부 같다.
그래도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가 선택했던 만큼 그녀의 웨딩드레스 또한 여느 하얗고 아름다운 드레스들과는 차별화 된다. 그녀 옷의 특징인 비정형적 볼륨감과 다소곳하고 수동적인 신부 이미지에 대한 반항을 자랑한다. (사진 2)

두 번째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컬렉션은 꼭 보수적인 사람뿐 아니라, 일반의 눈으로 봐도 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젊은 시절 운영했던 가게 간판이 ‘SEX’였다는 것을 안다.
처음부터 오픈하고 시작했으니, 뭘 더 감추겠는가. 그래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섹시하다는 표현보다는 야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때로는 천박하게, 때로는 순진하게, 때로는 색기가 넘치도록 야하다. ‘섹시하다’의 정의가 외모나 언행에 성적 매력이 있고 관능적이라고 한다면, ‘야하다’는 천하게 아리땁다 거나 되바라지다 라고 정의 된다.
섹시함이 남성의 시각에 따라 평가되는 수동적인 것이라면, 야함은 여성이 주체적이고 의도를 가지게 된다. 자신의 성적 매력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줄 아는 것이다. (사진 3) 나 좀 아는 여자에요를 드러낸다.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인생에 더 즐거움을 주지 않는가.

조형적으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컬렉션은 정신 없어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일견 옷 같지도 않은 천조가리 두른 것처럼 보인다고 하는 표현이 딱 맞아 떨어진다. 하지만 조금만 찬찬히 살펴보면 일부러 그러한 이미지를 풍기기 위해 패턴을 자유자재로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적’ 컬렉션이 그녀의 전환점이 된 것처럼 이후로 그녀는 패턴에 집중했다. 새로운 옷 본을 찾아 전통 복식과 세계 민속복들을 공부했던 그녀였다.
마침내 지금처럼 천으로 몸을 칭칭 감은 듯 울퉁불퉁하면서도 매력적인 자신만의 양식을 가진 실루엣으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이는 분명 완벽하게 재단된 재킷이나 바지 등을 변형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결과이다. 원본이 있고 비교가 되니 변주도 보기에 좋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이다. (사진 4)

그녀의 컬렉션에는 한 시즌에 중심적으로 쓰이는 색이나 천이 딱히 정해져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옷의 실루엣도 복잡한 데, 쓰이는 무늬도 마치 옷 수거함에서 끄집어 낸 듯 출처도, 연대도, 맥락도 없는 무늬들이 이리 저리 뒤섞여 혼란함은 가중시킨다. (사진 5)
정말로 저 옷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런웨이에 올린 것일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그녀는 분명 보편적인 아름다움과 영국만의 아름다움을 아는 디자이너다. 때때로 등장하는 꽃무늬나 체크무늬 의상들을 보면 이는 분명해진다. (사진 6)

이미 경지에 올랐기 때문에 콘셉을 위해 카오스를 능수능란하게 조정하고 있다. 그래서 그 철학을 이해하는 매니아에게는 아이러니하지만 거적때기 같은 옷도 고가에 팔린다.
펑크의 여신답게 영국의 다양한 이미지를 비꼬는데도 능하다. 보수적인 아주머니, 산업 혁명시대의 빈민, 기숙학교의 소녀, 영국의 경찰관 등 세계적으로 익숙한 영국의 캐릭터들을 선보인다.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재해석한 그들은 영국의 1등 시민이라기 보다는 어쩐지 불완전하고 나사가 풀린 듯 보인다.
지금까지 그녀의 컬렉션을 살펴 보면서 맥락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들을 정리해 보았다. 혼란스럽게만 보이는 그녀의 컬렉션도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그녀도 자신이 이토록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다양한 문화권을 섭렵하며, 지금의 비비안 웨스트우드 하면 떠오르는 캐릭터를 창조해 낼 것이라고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닐 것이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성공은 분명 시대의 부응으로 인한 문화적 폭발성에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시대를 읽는 눈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다고들 한다. 철학과 마찬가지로 디자인도 연역적 방법과 귀납적 방법이 있다. 이성과 논리로 온갖 콘셉을 계산하며 자신의 세계를 공고히 만들어 디자인하는 방법과 일단 콘셉이 세워지면 손과 몸을 끊임없이 놀려 자신도 생각지 못했던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귀납적 방법이 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두 가지 전술을 적절히 사용하고 자신이 만든 것을 발판 삼아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만들어 냈다. 그녀의 성공 비결이다.
고학수 전문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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