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12-비비안 웨스트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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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와 펑크의 공존

2013-09-16 오전 11:06:54



서양 복식사를 한 권의 책으로 담아 놓은 구성을 보면 서양사와 마찬가지로 한 시대에 경제적, 정치적으로 부흥했던 지역을 중심으로 시기가 나눠진다. 그런 점에서 영국은 대륙에서 떨어져 있는 섬인 관계로 유럽의 중심부이기 보다는 외곽 지역에 속했다. 따라서 영국의 패션이 복식사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르네상스 이후다.


우리의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영국 패션이라면 르네상스 시대 엘리자베스 여왕의 윗옷에 하얗고 빳빳하게 서있는 러프 칼라나, 당당한 풍채를 드러내며 서있는 헨리 8세의 초상화이다.


이후 프랑스의 전성기로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는 한참 건너 뛰어 엠마와 오만과 편견의 순백의 엠파이어 라인의 신고전주의 시대로 넘어오며, 산업혁명 시대를 거쳐 현대 남성복의 전신인 검정색 턱시도와 높게 각진 탑 햇(top hat)으로 처칠 같은 영국 신사의 전형을 만들었다. 여기에 깔끔하게 갖춰 입은 기숙학교 학생들의 모습도 영국의 전통적인 복식의 이미지이다.


이런 엄격한 법칙이 존재할 것 같은 영국의 복식 문화에 어떻게 펑크처럼 과격한 문화가 출현할 수 있었을까? 영국은 오랜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경제적, 정치적 성숙한 사회로 진입했다. 15세기부터 이윤을 추구하는 농업 경영이 발달했다.


18세기에는 해외 식민지를 경영하면서 산업혁명을 통해 탄탄한 산업 사회를 이룩했다. 정치적으로도 이른 시기에 의회 민주주의를 이룩하여 부르주아 계층의 불만과 요구를 의회를 통해 해결하였다. 종교적으로는 일찌감치 영국 국교회를 설립하여 종교적 독립을 선언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들은 프랑스처럼 급작스럽게 정치적인 혁명을 이룰 필요도, 독일처럼 산업 체제를 개편할 필요도 없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과격한 혁명이 없었던 탓에 미술이나 디자인 분야에서도 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전통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디자인사(史)의 맨 처음에 항상 등장하는 인물 윌리엄 모리스가 바로 그러한 인물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공업화 당시 미숙한 기계 사용으로 수준 낮은 디자인들이 쏟아져 나오자 사람 손으로 직접 만드는 미술 수공예 운동을 펼쳤다.


기계가 만든 조악한 디자인 대신 우아하고 정교한 영국 전통의 고딕 양식으로 되살리자는 것이었다. 다른 국가들이 혁명을 기점으로 새로운 사조의 미술과 디자인이 등장했던 것과 달랐던 점이다.
그러나 보수적이고 안정적이었던 영국 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례없는 경제난에 시달리게 된다. 전후 영국은 많은 무역 상대국을 미국과 일본에 빼앗겼으며 노조의 잦은 파업으로 극도의 경기 침체를 겪었다.


특히 1970년대는 중동 오일 쇼크로 30%의 인플레이션과 200%가 넘는 청년 실업률을 기록했다.
기존 질서에 포함되지 못한 영국의 젊은이들은 그 분노를 펑크 음악과 그들의 행동, 패션 등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섹스 피스톨즈는 음악으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패션으로 이러한 배경에서 무정부와 영국 왕실의 타도를 외쳤다.


패션계에서는 영국의 펑크 문화가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바라보지만, 사실 사회에 충격을 준 요소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섹스 피스톨즈의 음악과 그들의 행동들, 이들의 음반 재킷을 담당했던 디자이너 제이미 리드의 그래픽 디자인이 함께 맞물리면서 거대한 조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제이미 리드는 섹스 피스톨즈의 앨범 재킷을 디자인하며 섹스 피스톨즈 음악에 걸맞는 저항적이고 폭력적인 그래픽 언어를 만들어 냈다. 이전까지 영국의 그래픽 디자인이 전통을 이어 받아 우아하지만 권위적이었다면, 제이미 리드는 신문이나 잡지에 인쇄된 글꼴이 다른 글자들을 짜깁기한 레터링 방식으로 첫 앨범을 디자인했다.
 
이는 명백한 영국 그래픽 디자인계에 대한 반항이었다.
1977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25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제이미 리드는 범죄에 가까운 앨범 재킷을 선보였다. 신문이나 잡지에 인쇄된 글꼴이 다른 글자들을 짜깁기한 레터링 방식으로 여왕의 눈과 입을 틀어막은 듯 그 위로 노래 제목과 밴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 앨범 재킷은 지금 보아도 무례하고 불쾌한데, 1977년 당시 보수적이던 영국 사회는 얼마나 분노를 느꼈을까.


결국 이 앨범은 발매 금지 처분을 받았지만, 이 디자인을 통해 제이미 리드는 저항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으며, 전통과 완전히 결별한 표현으로 1970년대 후반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를 대표하는 그래픽 디자이너가 된다. 현재까지도 영국 그래픽 디자인계는 그의 사회 반항적인 디자인을 계승하고 있다. 이렇게 만연했던 펑크의 분위기에서 말콤 맥라렌이 섹스 피스톨즈의 매니저가 되면서 그의 연인이었던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패션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말콤 맥라렌은 ‘섹스 피스톨즈’라는 이름을 지은 주인공이었다.


두 사람은 1971년 ‘Let it Rock’ 을 오픈하고 1972년에 매장 이름을 ‘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죽기엔 너무 이르고, 살기엔 너무 타락했다)’로 바꿨다.
지퍼와 사슬, 안전 핀과 클립, 가죽, 배지 등을 선보여 젊은이들의 아지트가 됐다. 다시 가게 이름을 바꿔 ‘SEX’를 오픈하면서 그룹의 의상을 전담하게 됐다.


섹스 피스톨즈의 리더였던 쟈니 로튼의 자서전에는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펑크 패션을 창조했다기 보다 섹스 피스톨즈 멤버들이 제멋대로 입었던 옷 스타일을 쇼윈도에 걸어 놓았다”고 밝혔다.
어쨌거나 이 커플은 펑크 스타일은 대량 패션 시스템을 벗어나 스스로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DIY 전략을 기반으로 한 펑크의 기호들을 만들어 냈다. 펑크 패션에 옷핀이 많은 이유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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