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주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영국 왕실인데, 얼마 전 로열 베이비의 탄생으로 영국뿐 아니라 우리나라 언론까지 떠들썩했다.
아기 이름이 ‘조지’인 것이 괜찮은가에서부터, 윌리엄 왕세자, 케이트 왕세손비, 아기 조지, 엘리자베스 여왕 등 누가 왕실의 품위 기여도가 가장 높은지에 대한 설문조사와, 여기에 아기용품과 임부복으로 인한 경제 효과, 출생 신고서에 아버지 어머니 직업을 왕자, 공주로 썼다는 이야기까지, 정말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영국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까지 흘러들었다.
영국은 이렇게 여왕, 왕세손, 왕세자비, 왕자, 공주, 백작, 자작 등 베르사유의 장미에나 나올 법한 호칭들이 21세기에도 여전히 통용되는 사회이다. 철저한 계급 사회인 것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국에서 태어났다고 상상해 보자. 한 때 역사적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에 대한 국가적 자부심은 차치하고, 개인적 삶을 상상해 보자. 어머니, 아버지 다 직장을 다닌다. 사람들은 나를 노동자계급이라고 부른다. 10대가 되면서 세상, 즉 남들이 사는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된다. 연예인과 가십거리에 노출된다. 여기에 영국의 왕실 이야기가 더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왕실 이야기는 너무나 환상적이고 꿈같다. 호화로운 파티, 해외 순방과 외국으로의 휴가, 언제나 잘 꾸며진 그들은 행복한 미소로 사진에 찍힌다. 그들의 완벽한 패션, 몇 대를 물려받은 보석, 아무나 못 들어가는 귀족 학교, 모든 것이 최고급이다. 내가 속한 현실로 눈을 돌리자 모든 것이 초라하다.

TV 속 세상은 너무나 완벽하고 멋지기만 한데 나는 가질 수 없다. 과연 어떤 심리가 생기게 될까. 분노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들이 누리는 것을 누릴 수 없고, 저 세계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엄청난 노력과 실력으로 한 분야의 권위자가 되어 새로운 작위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나는 데이비드 베컴도, 폴 스미스도, 조앤 롤링도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베컴이나 폴 스미스가 될 가능성이 없다면 착실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그들이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고급 제품의 일부라도 사서 쓸 수 있도록 돈이라도 벌어야 한다? 나에게는 공부도 사치다. 관심도 없다.
나같은 아이들을 사회는 불량아, 문제아라고 부른다. 나는 점점 사회에 반항적인 성격을 띄고, 사회는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도덕적 기준, 세속적 기준들은 낡은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것일 뿐이다. 나는 내 멋대로 하련다.
어느 시대나 있을 법한 젊은 반항아들의 사고 구조다. 대개 잠깐의 방황기를 거치지만 철이들고, 부양해야 할 가족이 생기면 결국 그들도 그토록 혐오하던 부모세대와 같은 모습으로 시대에 안주하는 모습으로 늙어간다.
그런데 유독 이 반항아들을 하나의 이름으로 묶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영국에서발생한 펑크(punk)족, 펑크 스타일이다. 몇 천년 전부터 존재했던 ‘요즘 젊은 것들’이 어떻게 펑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을까?

사실 ‘펑크’라는 말 자체가 보잘것없고 가치 없는 사람, 불량 청소년, 애송이, 동성연애자, 농담, 허튼 소리 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스타일이 만들어졌고, 그들을 대변하는 음악과 밴드가 생기면서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 펑크족의 이미지, 스타일을 만들어 낸 원조가 비비안 웨스트우드이다.
인류역사의 영원한 숙제인 사회계층간의 갈등, 인종차별에 대한 무언의 항거, 기성세대가 독점한 사회에서의 좌절과 미래에 대한 야망의 포기는 펑크로 하여금 철저한 허무주의, 무질서, 무정부주의(anarchism)로 탈바꿈하게 한다.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만들어 낸 펑크의 이미지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자연 발생한 것이다. 어떤 큰 의도를 가지고 사회 변혁을 꿈꾸며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일부러 혁명을 일으키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왜 한 가지 방식으로만 해야 되고, 다른 방식으로 하면 안 되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라고 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삶은 그녀의 패션만큼이나 극단적이다. 10대까지만 해도 그녀는 오히려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장녀였다. 그녀는 미술에 관심이 있었지만, 안정된 직업을 갖기 위해 사범대학에 진학했고,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했으며, 20대 초반에 일찍 결혼을 했다. 그녀의 웨스트우드라는 성은 첫 번째 결혼으로 얻은 것이었다.
그런데 말콤 맥라렌과의 만남으로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후에 섹스 피스톨스의 매니저가 된 말콤 맥라렌은 예술학교 학생으로 당대 전형적인 반항아였다. 기성 세대의 문화를 비웃고 성과 마약, 로큰롤과 아방가르드 미학에 심취해 있었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비비안은 주류 문화에 대한 반권위주의적 태도를 갖게 되었고, 패션으로 이러한 태도를 점차 표출하게 된다. 자신이 추구했던 세상과는 너무도 다른 세상을 만나 충격을 받고 한 순간에 변해버린 것이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컬렉션에서 이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펑크족’의 모습은 사라졌다. 머리카락을 핫핑크, 오렌지, 초록색 등의 총천연색으로 물들여 닭벼슬처럼 빳빳하게 세우고, 검은색 가죽 재킷과 바지, 쇠사슬 체인으로 장식하고, 스터드가 박힌 옷을 입는 펑크 스타일은 한물 갔다.
여전히 펑크 스타일에 영향을 받은 후세 디자이너들은 끊임없이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찬양하며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 스스로도 시대에 대한 반항 정신을 여전히 패션으로 표출하고 있으며, 그녀의 삶 자체가 펑크이다. 그녀는 1941년 생이다.
고학수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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