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문명의 발상지이며,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고대 문명이 싹텄고 에게해 문명을 꽃피운 신화의 나라 그리스. 아직도 여러 도시에 그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아테네는 신화와 역사를 빼고서는 얘기할 수 없다.
사람들이 아테네에 도착해 먼저 찾는 곳은 ‘아크로폴리스 유적지’. 폴리스란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가 위치한 약간 높은 언덕을 가리키는 말인데, 언덕위로 올라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이곳에는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해 니케 신전, 에레크테이온 신전 등 중요한 신전들이 옛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많은 부분이 훼손되긴 했지만 그 웅장함은 여전하다.
아크로폴리스를 둘러보고 밑으로 내려오면 기념품 상점들과 레스토랑들이 밀집된 곳이 있다. ‘플라카’라 불리는 구시가인데 신타그마와 아크로폴리스 중간쯤 되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이방인에게 가장 아테네적이라고 생각되는 곳이다.
① 아레나 플리마켓 입구 |
‘플라카’ 지역은 아테네에서도 꽤 오래된 곳으로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을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다. 골목을 구경하다가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한 가게를 발견하였다.
액세서리 가게였는데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목을 빼고 그 가게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천정에서는 큰 소리로 울부짖는 공룡이 머리를 흔들고, 그 옆에는 멋진 액세서리로 양껏 멋을 낸 여자와 남자가 천정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공룡과 한판 사투를 벌이는 신나는 한 편의 드라마를 구경하기 위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 가게 앞에 자석처럼 붙어있는 것이었다.
물론 남녀는 실제 사람이 아니라 마네킹이었는데, 연출된 모습과 표정, 행동이 살아있는 듯 활기차다.
액세서리를 파는 가게에서 어떻게 이런 VMD를 연출할 생각을 했을까? 단순 액세서리만 가득 늘어놓고 파는 가게들 사이에서 단연코 눈이 띄고,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요소들이 가득한 가게였다.
화려한 액세서리로 무장한 마네킹들 덕분에 한 눈에 이 가게가 무엇을 파는 매장인지 알 수 있었다.
고객은 매장 입구에서 첫 인상을 결정한다. 이 매장에는 멋진 상품이 많을 것 같은 곳, 별 볼거리는 없을 것 같은 곳, 비쌀 것 같은 곳, 쌀 것 같은 곳의 이미지는 문밖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뭔가를 읽히게 하려면 10초 이내에 파악할 수 있도록 VMD 메시지의 내용을 조절해야 한다.
너무나 많은 메시지는 오히려 시선을 회피하게 만들 수 있다. 10초 안에 우리 매장이 무엇을 파는 곳인지 알게 하려면 강력한 메시지가 필요인데, 이 액세서리 매장은 공룡과 전투를 벌이는 마네킹들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VMD 컨설팅을 하다 보면 많은 매장 점주들은 손님들이 매장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그 이유는 뭘까? 이미 문밖에서 들어가 봐야 특별한 상품이 없을 것 같은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고객들은 내 옷장과 같이 물건이 가득한 창고 같은 매장을 보기 위해 쇼핑몰을 찾는 것이 아니다. 문밖에서 가게에 들어가면 뭔가 특별하고, 재미있고, 나에게 이익이 되는 상품이 많을 것처럼 보이게 하게 하는 VMD 메시지를 던져주어야 한다.
신나거나, 재미있거나, 무섭거나 또는 드라마틱한 메시지를 문밖에 있는 고객에게 시각적으로 전해주어야 고객은 매장 안으로 자석처럼 딸려서 들어오게 된다. 이 액세서리 매장에서 첫 인상을 신나게 만들어준 마네킹과 공룡의 조합처럼 말이다.
아테네 사람들은 가죽과 신발을 유독 좋아하는 것 같다. 여행 중 가본 많은 도시 중에서도 단연 돋보일 만큼 신발 매장이 많다. 각 매장들의 규모가 크고 거대 매장의 수도 엄청나서 마치 ‘신발 스트리트’ 같다. 한국 못지않게 신발을 좋아하는 패셔니스타들이 많은 모양이다.
②③④⑤ 공룡이 천장에서 내려오는 액세서리 매장 |
⑥ 초록색 배경이 돋보이는 샌들 매장 |

거리에서 만난 많은 신발 가게 중에서 비교되는 두 개의 가게가 있었는데, 한 곳에는 낙서가 가득한 흰 벽에 한 곳은 초록색 매트가 깔려있는 벽에 샌들이 걸려 있었다. 초록색 매트 하나가 샌들의 첫 인상을 바꿔 버렸다. 초록색 매트라는 배경을 가진 샌들은 여름 한철 잘 팔려나가 아테네 곳곳을 누비며 다닐 것이고, 고객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 샌들은 재고로 남아 어두운 창고에서 여름 한철을 보내야 할 것이다. VMD는 단순 진열을 넘어 상품의 가치를 고객에게 전달해주고, 상품의 운명을 바꾸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이 두 개의 신발 가게를 보면서 들었다.
일요일 오전이면 모나스티라키 벼룩시장(Monastiraki flea market)이 열리는데, 시장의 상점들이 문을 열기 전에 펼쳐진 벼룩시장은 또 다른 볼거리를 만들어 준다. 문을 닫은 상점들의 셔터에는 작가들이 그렸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다양하고 재미있는 그림들이 시장 거리를 활기차기 만들어 준다.
시장 주변에는 저렴한 숙소와 저렴하고 맛있는 식당 또한 즐비해서 배낭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
수블라키(Souvlaki)같은 아테네 전통 요리를 노천 식당에서 맛보는 것도 좋다. 수블라키는 우리말로 꼬치를 의미하는데, 생선, 채소, 과일 등의 재료를 꼬치에 꿰어 그릴이나 오븐에 굽는 요리이다.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 싫다면 현지인들의 생활과 쇼핑을 구경할 수 있는 아테네 중앙 시장을 가보자. 아테네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곳, 그리스에서 생산되는 모든 고기, 생선, 야채, 허브, 스파이스, 치즈, 올리브가 있다.
그중에서는 육류와 생선이 주종을 이룬다. 이 시장이 형성된 역사와 관계가 깊다. 수세기 전 백정들의 노점상들이 이곳에 하나 둘 생기면서 오늘의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시장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매우 재미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육점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이 의사 가운 같은 흰색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이었다. 육류를 손질하고 다듬는 모습이 흰 유니폼으로 인해 훨씬 더 전문적으로 보였다. 첫 눈에 이곳이 가장 크고, 가장 전문적이고, 가장 신선한 육류를 파는 곳이라는 것을 흰 가운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수 백 명의 점원들이 강력하게 전해 주었다. 이 정육 시장의 첫 인상을 결정한 것은 바로 신뢰를 주는 흰색 유니폼이었다.
① 아테네 중앙 시장 ②③④⑤ 보는 즐거움을 더한 상품 진열 |
정육 시장을 지나 과일 시장을 둘러보는데, 우리나라와 달리 토마토를 꼭지가 보이도록 진열해놓았다. 과일의 꼭지를 보고 싱싱한지, 싱싱하지 않은지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진열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들어오는 매장은 토마토, 복숭아, 레몬 등의 과일을 반을 잘라서 그 위에 진열한 곳이었다. 첫 눈에 이 가게의 과일이 얼마나 속까지 싱싱한지 알 수 있었다. 상품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진열로 고객에게 첫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생선 시장을 지나면서 깜짝 놀라서 한 가게에 시선이 고정됐다. 생선을 세워서 진열해 두었는데 지금까지 국내에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진열방법 이었다. 생선 한 마리를 뒤에 놓고 다른 한 마리를 그 생선에 기대어 세워서, 펄떡 펄떡 살아서 곧 수면 위로 뛰어 오를 것처럼 보이게 진열 한 것이다. 한 눈에 봐도 수직으로 얌전히 진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싱싱해 보였다.
아직 우리나라 생선 가게에서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데, 조만간 시도해보고 싶은 기법 중에 하나다. VMD라는 것은 정답이 없는 것 같다. 나라마다 모두 다르고, 지역마다 다르며, 주인의 성향에 따라 또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고객의 눈높이에 맞는 VMD야 말로 정답은 아니지만 해답은 될 수 있다.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고, 다른 것을 시도해보려는 용기야 말로 좋은 첫 인상을 전해 줄 수 있는 점포를 만드는 해안의 VMD가 될 것이다.
⑥⑦흰색 유니폼을 입은 시장 상인들 |
이랑주 VMD 연구소 대표
lmy7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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