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다리와 숏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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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3 오후 4:51:06

같은 재료로 만든 음식이라도 간이 잘 맞추어진 음식이 맛이 있듯이, 같은 구조를 가진 형태라도 부분과 부분의 비례관계가 제대로 잡혀 있으면 대단히 쾌적해 보인다. 비례를 조정해 주는 일은 흡사 음식의 간을 맛추는 것과 같은 일이다. 숏다리, 롱다리라는 말이 있다. 다리가 짧은 사람을 숏다리라고 하고 긴 사람을 롱다리라고 한다. 숏다리가 되고 싶은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이것은 단지 객관적인 비례의 상태만을 말하고 마는 그런 단어가 아닌 것 같다. 좀더 사람 감정의 깊은 곳을 들락날락하는 말인 것 같은데, 사실 요즘 사람이라면 누구든 길고 늘씬하게 뻗은 롱다리를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숏다리보다는 롱다리가 보기 좋기 때문이다. 다리가 짧고 다리가 길다는 말에는 ‘몸 전체의 길이에 비해서’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숏다리, 롱다리는 전체 몸길이에 비해서 다리의 길이가 어떠한 가에 따라 결정된다. 키가 크다고 롱다리가 될 수 없고, 키가 작다고 숏다리가 되는 것도 아니다. 큰 키라도 다리가 상대적으로 짧으면 숏다리가 되는 것이고, 작은 키라도 다리가 길면 롱다리가 된다. 키가 작다고 무조건 숏다리라고 놀리는 것은 조형논리에 맞지 않는다. 이렇게 전체의 상태에 따른 부분의 길이 관계를 비례라고 한다. 숏다리, 롱다리라는 말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고 있다는 것은 비례가 형태의 조형미를 규정하는 데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말해준다. 또한 조형의 중요한 원리인 비례가 우리 생활 속에 얼마나 깊게 녹아 있는지를 말해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비례 점이 아닌 이상 세상의 모든 형태는 비례를 가진다. 길이에 대한 폭, 높이에 대한 넓이, 면과 면의 면적 등 하나의 형태는 어떤 식으로든지 비례의 관계로 우리 눈에 들어온다. 이 관계는 단지 비례관계의 묶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롱다리나 숏다리처럼 형태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대단히 중요한 원인이 된다. 보통 형태의 아름다움은 화려한 색이나, 눈길을 끌 수 있는 재료, 특이한 형태요소와 같이 심미감을 촉발할 수 있는 어떤 성분이 들어감으로써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마치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면 짠맛이 나고 설탕을 넣으면 단맛이 나는 것처럼, 아름다운 형태라는 재료를 넣어주면 형태가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가 쉽다. 하지만 음식도 간이 맛아야 맞이 있는 것처럼 형태도 조형요소들의 비례가 맛있게 조정이 되어야 아름다워 보인다. 롱다리, 숏다리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같은 몸이라도 어떤 것이 더 긴가에 따라서 보기가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다. 따라서 디자이너들은 어떠한 형태에 직면하더라도 비례관계를 세밀하게 조정해서 가장 아름다운 상태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비례가 만들어내는 표정 비례의 또 다른 국면은 표정이다. 비례란 단지 조형적 심미성에만 국한 된것이 아니다. 비례는 또한 표정, 인상을 만든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금방 알 수가 있다. 이 세상에는 60억 이상의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하나도 똑같은 얼굴은 없다. 모두 증명사진 하나만으로도 얼굴을 구별할 수가 있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이것은 비례의 대단히 신기한 면이다. 사람의 얼굴이란 얼굴 모양이나 헤어스타일, 눈, 코, 입으로 구성되지만, 이들의 미세한 비례가 60억 이상의 헤아릴 수 없는 표정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은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아무리 조형요소가 적다고 하더라도 미세한 비례의 조절을 통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미지를 디자인할 수 있다는 조형적 가능성을 시사해 주기 때문이다. 볼에 난 칼자국이 무서워 보이는 것처럼 조형요소가 풍부해야지만 강한 개성이 표현 되는 것은 아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나 캘빈 클라인 같은 디자이너들은 단순한 조형요소만 가지고도 징그러울 정도로 다양한 디자인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같은 눈, 코, 입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인상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어떤 사람은 수많은 대중을 감동시키는 미인이 되고, 어떤 사람은 두 번 보기 싫은 인상파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이들은 단순한 요소들만을 가지고서도 가장 아름다운 형태를 뽑아낸다. 말하자면 얼굴이 너무나 예뻐서 화장을 하지 않아야 되는 그런 미인형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최소의 조형적 상황에서 이렇게 최대의 조형적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비결은 비례에 있다. 사람의 얼굴처럼 미세한 비례의 조절로도 얼마든지 다양한 표현을 할 수가 있다. 노련한 무술의 고수가 적은 몸놀림으로 수많은 적을 물리치는 것처럼 디자인의 고수들은 그리 많은 형태요소들을 동원하지 않는다. 큰 요동 없이도 인상적인 디자인을 빚어낸다.

최경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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