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비오 노벰브레(Fabio Novembre)는 디자인계에서도 싸이코(?)에 속한다. 워낙 독특하고 재미있지만 정상적인 사람이 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디자인들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재미있게 보이지만 형태를 다듬어내는 솜씨는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52회 밀라노 가구박람회(4월 9~14일)’에서 파비오 노벰브레는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드높여 줄 만큼 사이키델릭한 의자를 선보였다. 이름부터가 ‘졸리 로저(Jolly Roger)’, 해골에 2개의 대퇴골을 교차시킨 그림이 있는 깃발이라는 뜻을 담았다. 의자는 이름에 걸맞게 해골 모양을 하고 있다. 졸리 로저 의자는 신예 가구 디자인 브랜드 구프람(Gufram)을 위해 디자인한 것인데, 의자의 뒷면을 해골 모양으로 만들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폭소가 터지게 한다.
파비오 노벰브레는 해골과 의자의 모양을 절묘하게 일치시켜 의자로서 사용하기에 전혀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적절하게 해골의 특징을 표현했다. 사이코라는 명성과는 달리 디자인을 표현하는 손끝은 매우 합리적이고 기교가 넘친다. 해골의 모양을 부드러운 곡면으로 단순화한 파비오 노벰브레의 조형능력은 만화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매우 조각적으로 보인다. 해골의 눈과 콧구멍에서 빚어지는 강렬한 인상만 보면 다소 무서울 수도 있는 해골의 모습이다.
그런 인상을 빚어내는 곡면의 유려한 흐름은 무서운 인상을 우아하게 느껴지도록 마무리 하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해골의 모양을 정교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의자의 뒷부분 면을 부드럽게 살짝 움푹 들어가게 만들었다. 빛이 윗부분으로부터 비춰질 것을 계산해 해골의 눈과 코의 그림자를 효과적으로 어둡게 만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의자 뒷부분의 바닥을 잘 보면 해골의 입 부분의 모양을 단순하게 처리했다. 덕분에 의자의 바닥면이 다소 넓어져서 균형을 잘 잡게 되었다. 또 해골의 입 부분이 바닥으로 스며들어가는 듯 한 착시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의자가 마치 밑바닥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오면서 만들어진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해골의 서늘한 느낌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그리고 이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단순한 면으로 처리한 것도 매우 조형적이다. 해골의 표정이 단순한 면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전체적으로는 만화의 캐릭터 같은 재미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것도 놓칠 수 없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파비오 노벰브레는 의자 안 쪽에 자신의 익살스러운 모습을 최종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등받이 안쪽에다 세계 지도를 부조로 새겨 넣은 것. 해적과 세계 지도의 조합이라니, 해적이 되어서 세계를 누비겠다는 것일까? 아니면 해적활동으로 시작해서 세계를 주름잡았던 영국의 제국주의를 비아냥거리는 것일까? 이유야 어떻든 보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추측하면서 낄낄거릴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파비오 노벰브레의 디자인은 보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하고 의미론적 접근을 통해 역사와 정치에 대해 생각하게도 하는 능수능란한 솜씨가 돋보인다.
졸리 로저 의자는 그가 왜 요즘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제 디자인은 예전처럼 기능성이나 생산성만을 돌보아서는 안 될 일이다.
파비오 노벰브레는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와 사람들을 웃음 짓게 만드는 서정성으로 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길을 심각하게 토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chk869@hanmail.net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