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 특히 ‘숲’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각양각색이다.
누군가에게는 노르웨이의 숲으로, 누군가에게는 대나무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숲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울창하고 빽빽한 열대우림으로 연상될 것이다. 숲은 계절, 시간대, 기후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로 표현된다. 숲은 공간이기 때문에 컬렉션 무대의 배경으로도 종종 등장한다.
2013 S/S 아크리스(akris) 컬렉션은 푸른 열대의 숲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이었다. 특히 컬렉션에서 선보이는 옷 순서에 따라 패션쇼를 감상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동의 차원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절감했다. 숲을 배경으로 미니멀한 까맣고 하얀 의상을 입고 등장한 모델들을 보며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현대인을 표현한 것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크고 작은 네모 조각들, 투명과 불투명, 컷아웃되어 속이 비치는 가죽, 반짝이는 시퀸 원피스, 지퍼를 열어 속살을 드러내는 디테일 등 이 모든 것이 실은 울창한 숲의 나뭇잎 사이로 들어온 햇살을 기하학적으로 추상화한 것임을 깨달은 것은 컬렉션 중반이 지나 초록색 의상 나오고부터였다.
이렇듯 추상에서 구상으로 가는 계산 된 의상의 흐름 덕분에 컬렉션은 한 차원 높은 감동을 선사했다. 사람들이 직접적인 표현 보다는 은유적 표현을 더 예술적이라고 느끼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에 비해 2012 F/W 맥큐 바이 알렉산더 맥퀸(McQ by Alexander Mcqueen) 컬렉션에서는 낙엽을 깔아 놓은 런웨이에서 예의 그 음울한 로맨틱 무드의 컬렉션을 선보였다. 맥퀸의 디자인이 성공적으로 계승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평범하게 끝났을 법한 이 컬렉션은 마지막 모델의 밧줄 퍼포먼스와 가려져있던 어슴푸레한 자작나무 숲의 오두막의 등장으로 반전되었다.
무대의 배경이 드러나면서 지금껏 등장했던 모델들은 순식간에 숲 속의 오두막에 초대된 클러버(clubber)란 스토리가 가미된 컬렉션의 주인공들로 막을 내린 것이다.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기괴했던 알렉산더 맥퀸의 의상이 무대 장치와 결합해 스토리를 만들어내 관객을 이해시켰던 것처럼 사라 버튼 또한 맥퀸의 이러한 정신을 잘 이어가고 있었다.
연극의 3요소는 희곡, 배우, 관객이다. 연극에서는 무대가 없어도 배우의 대사와 몸짓으로 사람들은 배경을 상상할 수 있다. 패션쇼는 반대로 무대의 분위기를 통해 관객이 다양한 스토리를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패션쇼가 단순히 다가올 트렌드를 미리 맛보는 상업적인 장이 아닌, 감상하고 비평할 수 있는 예술의 영역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초록의 숲은 조명으로도 그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되기도 한다. 파티마 로페스(Fatima Lopes)라는 아직은 생소한 디자이너의 컬렉션은 색다른 조명으로 큰 인상을 남겼다. 네모난 프레임안에 수직 정원처럼 꾸며진 무대 배경은 파란색과 빨간색을 이용해 오묘한 보랏빛과 그에 비친 그림자로 일반적인 초록색의 식물이 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관능적인 무대를 만들어낸 것이다. 여기에 어딘가에 취한 듯 모델들의 느린 걸음걸이 또한 전체적인 분위기에 환상을 더했다.
고학수 객원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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