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다. 대중적인 킬링 타임용 연애소설도 있고, 마니아를 만들어내는 추리소설도 있다. 깊은 울림을 주는 대하소설이나 역사소설, 깨달음을 주는 성장소설까지.
어떤 장르, 어떤 깊이이던지 목적은 같다.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것이다. 일단 즐거움이 있으면 그 뒤에 감동도 받고 독자의 행동의 변화도 일어 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판타지 소설은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거대한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작가의 세계관의 구조가 탄탄하고 거대할수록 사람들은 종교처럼 소설에 빠져든다. 그에 대한 해설과 주석이 쏟아지고,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그 세계관은 더욱 전설이 되고 신격화 된다. 영국의 작가 J.R.R.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처럼 말이다.
그는 독자적인 신화를 갖지 못한 영국에게 바치는 신화 체계의 구축을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한 목적에 의해 집필한 반지의 제왕은 기독교 신화의 재창조, 북유럽 신화의 새로운 해석, 제1,2차 세계대전에 대한 정치적 비틀기 등 작가가 살아온 환경에 대한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패션 디자이너도 똑같다. 대중을 위해 한 시즌 유행할 옷을 만드는 패션 디자이너가 있는 반면, 현대 예술 작품처럼 철학을 가득 담은 옷을 만들어 내는 디자이너, 오래 된 브랜드의 유산을 끊임없이 재창조하고 현대화하는 디자이너, 오트쿠튀르` 옷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 등 다양한 층으로 나뉜다. 고객에게 시각적 즐거움과 감동을 주고 행동의 변화, 즉 구매를 이끌어 내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판타지 소설 같이 거대한 세계관을 보여주는 패션 디자인은 어떤 것일까? 판타지 소설 같은 패션 디자인, 어쩌면 이것이 전통의 현대화를 추구하는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인도의 집약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매니시 아로라(Manish Arora)는 1997년 그의 브랜드 론칭 이래로 끊임없이 인도의 전통을 현대화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인도 하면 떠올리는 전통복식 ‘사리’를 변형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의 화려함이라는 총체적인 이미지를 현대적인 요소와 결합시킨다.
서로 대비되고 부딪히는 색, 스팽글, 크리스털, 비즈처럼 반짝이는 소재의 과도한 사용, 아크릴이나 철판, 플라스틱 같은 산업 디자인용 소재들을 사용한 구조적이고 조각적인 형태들을 만들어 인도의 화려한 이미지를 완성해 낸다.
이전의 컬렉션들이 매니쉬시 아로라만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한 콘셉카 같은 역할을 했다면 이번 2013 S/S 컬렉션<사진 1>에서는 그의 인도적 정체성을 드러내면서도 아름답게 정제된 컬렉션을 선보였다.
옷은 전체적으로 높은 명도의 파스텔 톤으로 온화한 분위기에 금색, 형광색의 액세서리로 화려함을 더했으며, <사진 2>처럼 원피스와 바지를 겹쳐 입는 인도의 전통의상 형태를 차용했다.
특히 멋졌던 것은 암라팔리(Amrapali)라는 인도의 한 주얼리 회사와 콜래보레이션으로 탄생한 액세서리들이었다. <사진 3>과 <사진 4>에서 볼 수 있듯 섬세하게 제작된 귀고리, 브로치, 머리 장식들은 의상과 어우러져 어딘가 진짜 존재할 것만 같은 현대적이면서도 인도적인 세계를 완성해냈다.
한국적 정체성 현대화의 한 방법으로 매니시 아로라의 컬렉션은 연구할 가치가 있다.
고학수 객원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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