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스 빔 벤더스(Ernst Wilhelm Wenders)라는 독일 감독이 있었다.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영화로 세계적인 이목을 이끌었던 감독이었다. 유명한 산업 디자이너 필립 스탁(Philippe Patrick Starck)은 이 감독을 위해 등받이가 없는 스툴 의자를 디자인했다. 모양은 감독의 이미지나 영화의 이미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필립 스탁의 스타일이 잘 반영된 모양이었다.
우선 이 의자는 다리가 세 개 있다는 것이 구조적으로 매우 특이하다. 사람이 앉는 부분에서 가지처럼 세 갈래로 뻗어 나온 가느다란 다리는 정말 나뭇가지처럼 자유분방하게, 서로 다른 모양을 이루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일반적인 의자와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갖추게 되었다. 일단 색다른 모양이란 측면에서는 필립 스탁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는 않을 정도로는 파격적이다.
하지만 안장에서 뻗어 나온 세 개의 다리는 너무 가느다랗게 생겨서 앉는 사람의 체중을 온전히 견디어낼지 상당히 염려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세개의 다리만으로 중력을 이겨내면서 넘어지지 않을지도 상당히 걱정된다.
하지만 이 의자는 일반적인 의자처럼 앉는 의자가 아니다. 의자 위에 완전히 사람이 올라타서 앉는 것이 아니라 위쪽의 넓은 안장 부분에 엉덩이를 비스듬히 대고, 체중을 얕게 얹으면서 앉는 의자이다. 현장에서 영화감독이 하는 일을 생각한다면 의자 위에 체중을 모두 실으면서 편안히 앉는 의자보다는 앉는 것도 아니고 서는 것도 아닌 이런 의자가 제격일 것이다.
덕분에 이 의자의 가느다란 다리는 과도한 무게감을 억지로 버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바닥에 거의 삼각형 모양을 이루면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세 개의 다리는 보기와는 달리 균형을 잃고 넘어질 염려는 없다.
하지만 이 의자의 장점은 그런 물리적인 데에 있지 않다. 이 의자의 묘미는 의자이되 전혀 의자처럼 보이지 않는 모양에 있다. 전체적으로 전혀 대칭적이지 않은 모양과 어느 한 군데 똑같지 않은 요소들로 이루어진 형태는 의자라는 일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물건이기 보다는 하나의 조각품, 예술품에 더 가까워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디자이너 필립 스탁이 노린 것도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보아도 아무 문제없을 정도로 이 의자의 형태는 충분히 예술적이다.
조형적인 아름다움에 있어서 이 의자는 현대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작품에 비견할 만하다. 단지 다른 게 있다면 이 의자는 예술이 지녀야 할 자격이라고 할 수 있는 ‘무목적성’ 즉, 현실의 실용적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규정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도 챙기고, 예술성도 챙기고 있으니 오히려 순수미술품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가치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지 않을까.
아무튼 세계적인 디자이너 필립 스탁의 이 의자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의 시각에서도 여전히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의자 디자인이라도 예술품처럼 얼마든지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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