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턴가 봄이 다가오면 패션 잡지며 인터넷 쇼핑 광고에 일제히 “올 봄도 스트라이프가 대세”라며 “스트라이프 셔츠 하나 장만하라”고 성화다. 스트라이프처럼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고 현대적인 감각을 나타내면서도 산뜻하고 젊은 이미지를 동시에 보일 수 있는 무늬가 흔치 않다. 꽃무늬처럼 너무 여성스럽지도, 체크무늬처럼 특정 국가를 연상시키지도, 도트무늬처럼 귀여운 이미지만 주는 것도 아닌, 모든 이미지의 중간, 중용을 지키는 무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트라이프가 처음부터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스트라이프는 이슬람권에서 애용되던 무늬였는데 광활한 사막에서 쉽게 눈에 띄어야만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또는 형상을 피하고자 하는 이슬람의 기하학 패턴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스트라이프 무늬는 십자군 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되었으나, 극도의 혐오 대상이 되었으며 사회적으로 받아 들여지는 데는 수 백 년의 세월이 걸렸다. 여러 색이 조합 된 옷은 통일성을 깨뜨리고 사회를 교란시킨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성실한 시민과 사회질서를 혼란 시키는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 줄무늬가 사용되었다.
스트라이프의 문화사적 지위변화는 그렇다 치고, 그래픽적인 의미는 어떨까?
스트라이프는 자연물에서 그대로 따온 꽃무늬 같은 무늬에 비해 굉장히 추상화 된 논리적인 무늬이다. 천적에게 경고를 주기 위한 벌이나 착시 효과를 주기 위한 얼룩말의 줄무늬, 먹이를 잡기 위해 몸을 숨기기 위한 호랑이의 무늬 등 다양한 이유를 위해 진화 된 생명체에서 영감을 받아 연역적인 추상화 과정을 거쳐 인공적으로 기하학화된 무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스트라이프지만 사람들에게 특정한 색과 줄무늬의 굵기에 따라 연상되는 이미지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특히 하얀 바탕에 가느다란 파란 줄무늬 셔츠는 선원을, 같은 굵기와 간격으로 배치된 검정과 하얀색의 줄무늬는 죄수복의 이미지를 풍긴다.
이렇게 고정관념화 된 줄무늬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서였을까? 마크 제이콥스는 이번 2013 S/S 컬렉션<사진 1>에서 다양한 변화를 준 스트라이프 옷을 선보였다.
<사진 3>는 블랙과 화이트의 줄무늬로 언뜻 평범해 보이는 투피스지만, 치마의 허리선을 골반이 보일 정도로 내려 독특한 비례미를 선보였다. 이 옷을 보고 죄수복을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옷에서 스트라이프 무늬는 입체적인 장식을 붙이는 것이 아닌, 평면에서 비례를 따져야 하는 그래픽의 영역이다.
즉 같은 스트라이프라도 줄 너비와 간격에 따라 그 차이를 같이 비교해 봤을 때 그 미묘한 비례미를 더 재밌게 느낄 수 있는데 <사진 4>이 그런 경우다. 이 사진은 엠포리오 아르마니의 2012 F/W 컬렉션인데, 아르마니는 종종 런웨이에서 색이 다르거나, 비례가 조금 다른 옷을 입은 모델 두 명을 함께 워킹시킨다. 이는 마크 제이콥스가 이끌고 있는 루이비통의 컬렉션<사진 2>에서도 나타났다. 루이비통의 특징적인 다미에(체커보드)무늬를 입은 모델들을 두 명씩 등장시켜 조금씩 비례가 다른 다미에 무늬를 비교시킨 것이다. 게다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한 무대는 시각적 착시를 더욱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고학수 객원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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