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흑같은 한밤중에 등대로부터 흘러 나오는 한줄기 빛은 어두운 밤 속에 녹아 들어있는 뱃길을 밝혀준다. 디자인에서도 그런 역할을 하는 것들이 있다. 어떤 방향으로 디자인을 전개시켜 나가야 할지 막막한 시점에 수십 년 앞을 보게 만들고, 수십 년 동안 이루어질 디자인의 흐름을 만들어 놓는 등대와 같은 디자인이 있는 것이다. 이런 디자인들은 그저 잘 팔리고, 기능적인 면을 강조한 디자인들과는 다른 차원이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등대처럼 자신이 비춰주는 길이 주인공이 되다 보니 항상 그 자리에 있긴 하지만 정작 눈에는 잘 안 띈다는 아쉬움이 있다. 찰스 레니 맥킨토시가 20세기 초에 디자인한 힐 하우스 의자도 그런 종류에 속하는 디자인이다.
힐 하우스 의자는 전체적으로 곡선이 하나도 없이 직선적 구조로 이루어진 형태는 엄격한 20세기 기능주의 디자인을 대변하는 듯 전형적인 면모를 하고 있다. 이 말은 곧 현재의 시각에서도 전혀 이상하거나 촌스럽지 않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의자가 디자인된 시기가 1904년에서 1908년 사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이 디자인이 다가올 시대의 스타일을 얼마나 이른 시간에 예측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해 보이는 이 의자를 하나하나 따져 보면 등대에서 그칠 수 없는 독특한 디자인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횡으로, 종으로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게 결합되어있는 나무막대기들의 어울림이 너무 딱딱해 보이거나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 조형요소들이 수평과, 수직운동만을 하게 되면 형태가 반드시 딱딱하고 건조해 보이기가 쉬운데, 이 의자에서는 그런 인상이 풍기지 않는다. 적절하게 규범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느낌들을 함께 갖추고 있다. 조형적 스타일은 기계적 미학을 떠올리게 해야 마땅하지만 오히려 바로크나 로코코 시대의 우아한 귀족적 취향을 떠올리게 한다. 이건 분명 모순적인 현상이다.
그 비밀은 사다리꼴 모양으로 되어 있는 의자 바닥과 과도하게 높이 올라가 있는 등받이의 비례에 있다. 의자의 바닥을 사다리꼴로 하면 의자의 크기가 실제보다 작아지면서 앉기에도 편하게 된다. 아울러 의자의 뒤편이 좁아지면서 의자의 인상도 앙증맞고 귀엽게 보인다. 의자의 무게감도 대폭 축소되어 실내공간에 부담을 주지 않을 정도가 된다. 그렇게 무게감이 대폭 축소된 빈 공간으로는 높게 올라간 등받이가 마치 조각품의 일부인 것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렇게 해서 의자의 좌우길이는 심한 비례의 대비감을 형성해서 기존의 의자에서는 전혀 맛볼 수 없는 비례감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귀여우면서도 권위적인 이중성을 하나의 의자에서 모두 표현하고 있다.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디자인, 기능주의의 길을 열었던 디자인으로만 보기에는 모자람이 있다. 언제 만들어졌더라도 걸작은 복합적인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chk869@hanmail.net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