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미국 중소도시 램버튼. 파란 하늘 아래 한들거리는 튤립,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모습…. 평화롭고 전형적인 시골 풍경으로 시작된 영화는 이내 기괴하고 광적으로 섹스를 즐기는 변태성욕과 마약이 난무하는 하층세계를 보여준다.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두 세계가 한 공간에서 서로 얽혀 있음을 묘사한 영화 <블루 벨벳>의 데이비드 린치 감독은 ‘새디스트’를 소재로 한 특이한 구성 전개와 충격적이고 어두운 세계를 묘사해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아담한 정원이 딸린 집 앞, 잔디에 물을 뿌리는 노인이 갑자기 뒷목을 잡고 쓰러진다. 여유로운 음악과 함께 시작된 고요한 아침, 카메라는 이 갑작스러운 사건에서 시선을 돌려 잔디 밑의 꿈틀거리는 벌레에 고정된다. 외관상으로는 평화로운 일상이지만 그 이면에는 음습한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상징화한 것이다.
삶의 이중적 단면을 그려낸 영화 <블루 벨벳>은 도입부에서 인간 세계의 이중성을 상징적으로 집약해서 보여주고, 종결부에서 다시 평화로운 모습을 되찾는다. 처음에 등장했던 잔디 속의 시커먼 벌레가 새의 먹이가 되어버리는 장면이다.
악몽 같은 상황이 종결되었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마약, 폭력, 성도착 일상생활 이면에 감춰진 극단적인 세계
<블루 벨벳>의 감독 데이비드 린치는 미술을 전공한 경력이 말해주듯 평화로운 마을의 풍경 이면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광기 어린 모습을 현란할 정도로 다채로운 컬러를 사용해 아찔한 영상으로 만들었다. 자극적인 영상을 선호하는 그는 과감하고 극단적인 클로즈업 기법을 즐겨 써 영화를 더욱 선정적이고 강렬하게 표현한다. 인간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악한 마음과 잔혹함, 추악하고 섬뜩한 현실이 묘한 미학적 아름다움과 절묘히 뒤섞여 시종일관 이색적이고 실험적인 화면들을 만든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은 시시각각으로 일상의 평온함을 위협하는 불온한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강한 용기와 사랑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제프리(카일 맥라클란 분)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도로시(이사벨라 로셀리니 분)의 비극을 막아내기 위해 프랭크(데니스 호퍼 분)에게 맞선다. 샌디(로라 던 분)는 제프리를 따사로운 사랑으로 감싸주고 격려해 준다. 이러한 용기와 사랑 같은 삶의 미덕이 포악한 프랭크를 이긴 것.
미스터리한 블루 벨벳의 매력
영화의 제목이자 록 그룹 ‘스타터스(Statues)’가 1960년에 발표한 곡명이기도 한 ‘블루 벨벳’은 여주인공 도로시의 모습을 표현하는 의상 소재로 등장해 음산하고 퇴폐적인 인간 사회의 한 단면을 묘사하는 임무를 맡았다. 고급스러운 이브닝웨어에 어울리는 소재 벨벳은 영화에서 ‘블루’라는 컬러와 만나 어둡고 음산한 느낌을 더한다. 어둡게 움츠리다가도 눈부실 정도로 찬란하게 빛나는 벨벳은 빛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극단적인 얼굴을 보여준다.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미스터리한 세계와 닮았다. 코튼 소재가 평화로운 일상을 상징한다면, 벨벳은 결의 반대 방향으로 쓸어올리면 거친 모습을 드러내는 현실세계 이면을 표현한다.
잔잔한 일상이 부드러운 앙고라와 베이비 핑크를 입은 순수한 여대생 샌디라면, 인간 사회의 이중적인 단면은 번아웃된 블랙 벨벳 드레스를 입고 바에서 노래하는 도로시가 대신한다. 특히 도로시의 흰 피부에 닿은 블루 벨벳 드레스는 차갑고 냉혹한 현실을 드러내고, 프랭크에게서 받은 굴욕을 쾌감으로 변질시키는 도로시의 새디스트적인 감성을 묘사한다. 하지만 따뜻하고 포근한,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벨벳의 또 다른 모습처럼 도로시는 이내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다.
우리는 어떤 세계에 존재하는가
이 영화는 ‘우리가 어떤 세계에 존재하는가’ 하는 존재론적 문제에 관심을 둔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영화에 속한다. 그러나 영화 속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신이 어떤 세계에 존재하는지 확신하지 못하게 하는 회의를 안겨준다.
포스트모던 공간이 빚어내는 모호하고 분열증적인 사건 속에서 자신의 방향을 상실한 것이다.
주인공은 이 두 세계가 끔찍한 대단원에서 서로 충돌할 때까지 어느 세계가 진정한 리얼리티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끝내 두 여인 사이에서 갈등을 끝내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혼돈의 결과다.
김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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