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디자이너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아름다운 모양이나 화려한 색의 배합, 고유의 향이 야기하는 특별한 추억 등 오감을 자극하는 꽃은 아이디어의 보고이다.
꽃과 함께 꽃다발을 드는 제스처를 옷에 반영한 컬렉션이 있다. 질 샌더를 이끌었던 라프 시몬스의 마지막 컬렉션이다. 주제는 명확하게 ‘꽃’이었으나, 그 꽃을 입는 방식이 완전히 새로웠던 컬렉션이었다.

가장 첫 번째 옷이었던 <사진 1>은 꽃다발을 든 것처럼 코트의 여밈 부분을 앞 가슴에서 움켜쥐어 Y자로 만들어진 코트 모양 위로 마치 옷을 입은 모델의 얼굴이 꽃인 듯 은유적으로 표현됐다. 코트에 따로 단추나 후크 등 여밈 장치를 하지 않았는데, 이는 패션쇼 이후에 실제 소비자가 옷을 입게 되었을 때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디자이너의 의도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입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원래의 콘셉을 유지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사물의 외적인 형태에서 영향을 받은 디자인이 아닌, 몸짓을 통해 어떤 특정한 사물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은 디자인 방법론에 있어서 완전히 색다른 접근법이었다.
마지막 컬렉션에 기념비적인 옷을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라프 시몬스는 질 샌더라는 브랜드 특유의 간결한 디자인에 놀라운 디테일들을 조용히 숨겨 놓고 컬렉션을 보는 것에 흥미를 더했다.

코트를 입는 특별한 방식 외에 어떤 복선이 깔려 있었는지 살펴보자. <사진 2>는 컬렉션 중간에 등장한 코트다. 고명도 고채도였던 <사진 1>과 달리 정말 꽃의 밝고 맑은 빨간색을 그대로 가져 온 듯한 색이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앞의 코트와 비교되는 강렬한 색이 특징이라면 아쉬웠을 것이다. 이렇게 큰 코트를 단색으로 처리한 것은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이었다.
비밀은 바로 샌들이다. 겨울 코트와 샌들의 상이한 계절감을 비롯해 단색의 코트와 작은 신발 안에 세심하게 들어가 심지어 형광 주황과 감색으로 보색대비까지 이용한 색을 활용했다. 부피가 큰 코트와 가느다란 끈으로 된 샌들의 작은 면적까지 코트와 샌들의 모든 것을 대비시켜 ‘대비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미니멀리즘의 대명사 질 샌더의 매력이자 정체성을 제대로 보여 준 것이다.
꽃의 구조를 기하학적으로 변환한 디자인도 있었다. 꽃이란 꽃잎과 암술, 수술이 모여있는 중앙 부분으로 나뉘는데, 대개는 활짝 벌어진 꽃잎에서 벌이나 나비를 유도하기 위해 깊숙하게 파고드는 구조로 되어 있다.

<사진 3>은 이러한 꽃의 구조를 볼륨감이 살아있는 활짝 벌어진 꽃잎 부분과, 깊은 중앙 부분을 단순화하여 표현했다. 공간과 깊이감이 느껴지는 안팎의 구별이 모호한 주름을 만들어 지금까지의 디자이너들이 꽃 모양 자체를 형상화했다면, 라프 시몬스는 이렇게 깊이 파고들어가는 꽃의 구조를 선보여 다른 디자이너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옷을 선보였다.
옷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꽃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이 컬렉션은 지금까지 꽃을 접근했던 방식이나 개념과 완전히 다르다. 쇼가 끝나고 깐깐하기로 소문난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가 기립 박수를 보낸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고학수 객원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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