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다듬지 않은 조형들과 21세기에 나타난 현대의 디자인들이 유사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과연 어떤 이유로 몇 백년의 격차를 두고 있는 두 유형의 조형들이 비슷하게 휘어진 것일까?
거리를 보나 문화적 차이를 보나 공통적 이유가 있다는 것은 찾기 어렵다. 단순히 휘어졌다고 해서 모두 다 같은 이유의 결과로 볼 수 없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어떤 형태가 바른 형태를 취하지 않고 휘어지고 덜 다듬어진 데에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형태를 장식적으로 아름답게 만들거나, 기능적으로만 만드는 것이 동서고금의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왜 조선 후기나 요즘 디자인들은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형태를 지향하게 되었을까?

조선시대 분청사기에 현대적인 드로잉이 그려져 있는 데에는 조선시대의 문화가 하인리히 뵐플린이 말한 회화적 단계에 이르렀다는 짐작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 회화적 단계가 지향하는 방향이 기하학적 추상이나 인상주의적 표현, 구성주의적 방향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이란 조선시대 문인의 산수화를 보면 산수를 정확하게 그리고자 하는 의지는 전혀 없고, 산수를 추상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강하게 읽힌다. 마치 20세기 초 야수파나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연상시킬 정도로 필세의 역동적 표현이 돋보인다.
앞서 살펴 본 것처럼 우리의 조형예술들이 조선시대에 들어와 이렇게 형상보다는 표현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결국 ‘자연’을 실현하고자 한 철학적 경향의 소산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그래서 살아있는 생동감이 왕성한 ‘자연’. 바로 그 자연을 표현하려는 미적 목적이 구체화되면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세계 디자인이 보여주는 추세가 불규칙 지향의 현상이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비평적 견해들이 있다. 20세기 후반만 해도 해체주의나 포스트 모더니즘과 같은 양식론들이 디자인을 설명하는 주요한 개념이었다. 20세기 말에 나타난 디자인들은 기존의 모더니즘적 경향에 대해 반발심이 디자인의 주요한 목적이었고 동기였다.

하지만 요리스 라망의 본 체어(bone chai)를 보면 21세기에 들어와서 나타나는 디자인들은 무엇에 대해서 반대한다는 느낌보다는 뭔가를 뚜렷하게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뼈 의자라는 이름처럼 기계적 미학관을 지향했던 20세기의 디자인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네덜란드의 디자이너 위르겐 베이의 통나무 벤치를 보면 더욱 확실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긴 통나무에 의자 등받이만 꽂아 놓은 모습은 임진왜란 때 타버린 모과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쓴 화엄사 구층암의 기둥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렇다면 왜 네덜란드의 현대 가구 디자인이 조선시대 건축과 유사한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일까? 기계가 있는데도 일부러 나무를 깎지 않았다면 이 뒤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되도록 나무의 자연성이 인공적으로 가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21세기 서양의 디자인 뒤에 ‘자연’이라는 것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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