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표현’을 위해 휘어지고 꺾어지다
독일의 미술사학자 하인리히 뵐플린은 시각의 역사는 “늘 시대가 처한 포괄적인 발전상에 포함된다. 제멋대로 진행되는 고립된 과정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 과정은 늘 내용적인 측면을 띠며 시대와 민족의 요구를 반영한다”라고 일갈했다.

휘어진 나무기둥이나 좌우대칭이 맞지 않는 우리의 도자기들도 그것이 불량품이 아닌 이상은 아무 생각 없이 마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지게 된 시대적 배경과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양식의 발전을 진화론적으로 해석한 하인리히 뵐플린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는 조형의 양식이 대체로 초보적 단계에서 양식적 견고함과 안정감을 취하게 되는 고전적 단계로 이행하고, 완성도는 있으나 예술적 자유도가 떨어지는 고전적 단계를 지나면 회화적 단계로 이행한다고 말했다.

회화적 단계란 형식적인 안정감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형태의 예술성을 자유자재로 표출하는 보다 발전된 단계를 뜻한다. 가령 18세기까지 서양의 미술이 고전주의적인 양식을 추구하다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러 빈센트 반 고흐나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화가들의 추상미술로 전환하는 과정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작가 개인을 보거나 동서양의 대체적인 조형예술의 경향들을 거시적으로 보면 형식적인 엄밀성을 추구하는 고전주의 단계를 지나 형식의 견고함에 대한 비중이 적어지면서 표현의 단계, 즉 내적 가치에 더 치중하면서 형태가 자유롭게 전환되는 시기를 맞았다.

우리나라 도자기의 흐름을 이러한 시각에서 살펴보면 어느 정도 유사한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고려시대의 엄밀한 형태와 그림들에 비하면 조선시대의 도자기들은 그런 형태의 엄밀성으로부터 탈피하는 과정들이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인리히 뵐플린의 견해와 그대로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조선 후기 비대칭형의 도자기들은 그런 회화적 경향의 절정 단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경향은 단지 그릇에 멈추지 않고 건축물이나 회화 등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전반적인 흐름은 양식적인 변화를 동반한 거시적 사태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숲이 아닌 나무를 보는 좁은 시야로 한국 문화는 소박하다는 미시적이고 감상적인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조선 후기의 우리 문화는 고전주의에서 지적 표현을 추구하려는 회화적 단계로의 발전이 명확하다.

문제는 이런 경향들이 21세기 현대 디자인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20세기 기계주의 미학에 사로잡혀서 엄격한 형식성을 쫓던 디자인들이 21세기에 들어오면서 형태의 엄밀성을 극심하게 파괴하고 있다.
역시 하인리히 뵐플린의 안목이 적중하고 있는 양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디자인의 흐름이 조선 후기의 문화적 흐름과 유사하게 움직이고 있다. 앞으로 한국 문화의 선전이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chk8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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