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에 반영된 한국 건축의 독특한 접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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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디자인 기행

2013-01-03 오후 2:27:37

자연이 있는 그대로의 모양으로 스며들어


우리의 고전 건축에서는 자연이 자유롭게 스며들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사실 이것은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가 도나토 브라만테가 로마에 설계한 템피에토 성당을 보면 서양 건축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장식이 들어가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건물의 모양은 조형적으로 꽉 짜인 르네상스 스타일이다. 서양 건축 특유의 장식이 많이 제거된 것이 르네상스 건축이긴 하다. 이처럼 수학적으로 빈틈이 없는 구조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르네상스 시대뿐 아니라 서양 건축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일반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역시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의 산 로렌초 성당을 보더라도 거칠지만 구조적으로 견고한 건물을 추구하고자 한 의도가 느껴진다. 그런데 우리의 고전 건축을 보면 이런 서양의 접근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집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둥이다. 서양의 거대한 건축물들은 무거운 하중을 기둥뿐 아니라 두터운 벽이 같이 부담하지만, 우리의 건축에서는 집의 하중을 오로지 기둥이 도맡아서 견딘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둥을 자연 나무의 모양 그대로 넣어 놓은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기둥뿐 아니라 기둥을 받치는 초석까지도 자연 그대로의 모양이다.



화엄사에 딸린 암자 구층암의 기둥도 매우 충격적이다. 모과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썼다. 원래 있었던 기둥이기 보다는 나무가 자라면서 기둥이 된 것 같다. 이런 접근을 ‘자연스럽다’라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마치 이념이 전개되지 않은 원시적인 의식 상태에서 만들어진 결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미 거대하고 조형적으로 완벽한 구조를 만들었던 것에 반해, 우리는 조그마한 암자도 자연에 기대었던 탓에 발전되지 못한 미개한 상태에 머물고 만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병산서원의 서까래나 지붕의 구조물들을 보면 15세기 르네상스 건축물에 비해서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기술적 미숙함으로 보이기가 쉽다. 그러나 우리 건축물들의 구조를 살펴 보면 아무렇게나 만든다고 서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병산서원의 지붕을 이루는 나무의 구조는 하중과 지지라는 모순되는 문제들을 매우 경제적으로 풀어낸 결과이다. 특히 서로 다르게 생긴 재료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런 구조물들을 견고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돌과 달리 나무는 수십 년 동안을 수축하기 때문에 병산서원처럼 500여년 동안 무너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대충 만든다고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무의 모양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기술과 양식적 문제가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 우리 건축은 상식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이렇게 자유롭게 휘어진 나무를 쓴 것은 아니었다.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불국사를 보면 건물의 기초를 비롯해서 어느 부분도 다듬지 않은 부분이 없으며, 정확하게 수학적으로 계산되어 있는 것을 살필 수 있다.



휘어진 나무가 그대로 건축의 부재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부터였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떠한 미학적 논리를 전제로 한 의식적인 양식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chk8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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