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환경, 지속 가능성, 재활용 등의 단어들이 공기처럼 우리 주변을 감돌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 기계주의의 시대를 건너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세기 동안 기계문명이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처럼 여겨졌지만 결국 오염된 공기와 자연, 고갈된 자원의 위협이 21세기로 이월되며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것 같다.
덕분에 21세기는 기계문명이 남긴 부정적 자산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20세기가 기계문명과 함께 유토피아를 꿈꿨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걷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디자인 업계는 온통 기계문명이 남긴 문제들로부터 시작하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많이 보인다. 시대가 직면한 문제를 디자인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는 기계문명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움직임이었는데, 그런 점에서는 디자이너들의 의식도 상당히 향상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때론 윤리의식의 과잉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기도 한다. 디자인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는 좋지만 무슨 일이든 과하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친환경을 앞세운 디자인들 중에서 이런 경우가 많다. 윤리적 접근은 긍정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적어도 디자인이라면 풀어야 할 숙제가 분명히 있다.
아무리 디자인이 환경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려한다고 해도 디자인이라면 심미성이나 기능성의 문제를 등한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부분에 하자가 있다면 환경적인 접근은 디자인 능력의 부족을 윤리성이라는 가치로 대체했다는 의심을 피해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했던 골판지 의자 위글(Wiggle)은 모범이 될 만하다. 사회적 윤리성을 파고들면서도 디자인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놓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골판지는 종이를 재활용한 재료이다. 색깔이나 구조가 디자이너에게 그리 유리하지는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골판지의 장점은 가벼우면서도 가격이 싸고, 구조적으로 이뤄져 일반 종이에 비해 튼튼하다는 것이다. 골판지의 장단점을 살려서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동안 골판지로 만들어진 디자인들은 의미는 있으나 볼품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위글 의자는 골판지의 특징을 잘 활용해서 형태나 기능면에 있어서 완벽하게 조율한 수작이다.
우선 의자의 옆 모양을 보면 긴 선적 구조가 휘어져 있는 모양이다. 골판지라는 재료의 취약함을 생각한다면, 그런 취약함을 오히려 파고드는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의자로서 구실을 제대로 할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그런 약한 이미지를 가진 의자의 구조를 찬찬히 살펴보면 좀 이상하다. 휘어진 구조들의 위 아래가 좌석의 앞 뒤로 겹쳐 있다. 앉는 사람의 하중을 앞, 뒤로 분산시키게 되어 있다. 골판지의 부실함을 구조적으로 막느라 부담스러운 모양을 하고 있는 일반적인 디자인들에 비해서는 훨씬 가볍고, 예술적인 모습이다. 프랭크 게리는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디자인한 거장답게 이 작은 의자 하나에도 예사롭지 않은 면모를 보여주었다.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chk8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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