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몬드리안은 20세기 초 신조형주의라는 말을 앞세우면서 직선만 쓴 그림을 그렸다.
어릴 때부터 화가의 조수로 들어가 뼈빠지게 그림을 그렸던 선배들과는 완전히 다른 그림이었다. 손이 성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따라 그릴 수 있는 매우 쉬운 그림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이 그림을 두고 못 그렸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대 추상미술의 문을 연 상징적인 그림이 됐다.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입생로랑이 자신의 패션에 적극적으로 인용했을 정도다.

말레비치와 같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화가들은 기하학에 특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 말레비치는 몬드리안보다 더 기하학적으로 단순화시켰다. 이렇게 형성된 기하학적 회화들은 희한하게도 20세기 현대미술의 도도한 흐름을 만들었고, 서양미술의 정신적 우월함을 세상에 알렸다.
기하학 추상의 역사를 가지지 않았던 우리는 쇄국의 경험 때문인지 서둘러서 발전된 서양미술을 받아들였다. 이런 기하학적 추상형태(물론 표현주의적 추상형태를 포함한다)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우리의 전통 예술은 낙후된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림에는 추상과 구상이 있다. 추상은 지적인 내용을 담고, 구상은 현실적인 내용을 담는다. 현대 미술이 구상 보다 추상을 높이 산 것은 정신적인 내용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정신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몬드리안은 아예 기교적인 회화기법을 쓰지 않았고 기하학적인 형태만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점이 오히려 그의 가치를 정신적으로 높였고, 급기야 그런 형태를 갖지 않았던 우리 전통을 정신적이지 않은 것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조각보를 대단한 것으로 여기는 인사동의 분위기 뒤에는 몬드리안에 대한 열등감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왜 서양 사람들은 기하학적 형태를 정신적이라고 보았을까? 그것은 수학 때문이었다. 기하학은 사실 화가가 아니라 수학에 의해서 만들어진 형태이다. 수학은 현대가 아니라 이미 그리스 시대부터 서양 문화에서 정신성을 대표하는 학문이었으며, 각별한 대접을 받아왔다. 왜냐하면 수학은 자연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거친 자연을 부정하고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서양문화에서 수학은 예측 불가능한 자연을 대신한 완벽한 이상의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서양의 정신성의 바탕에는 반자연주의가 깔려있는 것이다. 실제로 몬드리안은 불규칙한 자연이 너무 혼란스러워 기차 여행을 할 때는 항상 창문을 닫고 다녔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연에 대한 입장이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도 정신을 담기 위해서 회화에 기하학적 형태를 담아야 했을까? 기하학적 전통을 찾아 볼 수 없으니 우리 선조들은 그림에서 정신성을 표현할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낙후한 것일까? 정선이 그린 금강산 그림을 한 번 보자.

아마도 금강산을 그린 그림으로는 가장 유명한 그림일 것이다. 하지만 금강산은 이렇게 둥글게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에는 비행기도 없어 하늘에서 금강산을 내려다 볼 수 없었는데,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이 그림은 금강산을 그린 풍경화가 아니다. 금강산을 빗댄 태극의 표현이다. 전체 구도를 보면 산들이 둥글게 모여 있는데,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으로 구획이 나뉘어져 있다. 금강산도 자연, 태극도 자연, 둘 다 자연을 함축하고 있는 이미지이다. 기하학에 못지않은 정신의 표현이자 추상회화이다.

조선 후기의 명필가인 추사 김정희의 서예는 더욱 추상화됐다. 색도 검은색, 흰색만 있고, 면도, 입체도 없고 선으로만 모든 것을 예술적으로 표현했다. 그 모든 조형 안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기운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정신성을 표현했던 것이다. 기하학에 비하면 ‘기운생동’이라는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있다.
<사진>(위에서부터)① 몬드리안의 컴포지션 ② 말레비치의 구성 ③ 정선의 금강전도 ④ 추사 김정희의 구오복일일수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chk8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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