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은 이제 세계적으로 대세가 되었다. 디자인에 있어서도 자연의 열풍은 무섭게 일고 있는 중이다. 개념적인 것이든, 재료적인 것이든, 자연과 연계하려는 디자인들이 홍수처럼 나타나고 있다. 바우하우스를 필두로 나타났던 20세기 서양 디자인의 기하학적이고 기계적인 경향들이 언제적 얘기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산업 디자이너 로낭&에르완 부홀렉(Ronan & Erwan Bouroullec) 형제도 그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최근 디자인에서 그들의 행보는 ‘자연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는 느낌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3년간 나무의 생태를 연구해서 디자인했다는 Vegetal blooming 의자의 디자인에서 그들의 자연적인 행보를 느낄 수 있다.
플라스틱은 가장 공업적이고, 반 자연주의적인 재료이다. 하지만 이런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이 의자의 면모는 그런 공업적인 면을 많이 벗어난다. 부홀렉 형제가 만든 Vegetal blooming 의자를 자세히 보면 의자의 바닥과 등받이가 불규칙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형태를 놓고 보면 어디서 영감을 받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나무나 식물의 불규칙하면서도 조직적인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형태와 닮아있다. 이 부분의 처리는 플라스틱 재료가 주는 공업적인 성질을 상당히 감퇴시키고 있다. 그동안 플라스틱 제품에서 경험했던 딱딱한 느낌을 이 의자의 모양에서는 전혀 볼 수 없기 때문에 플라스틱이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진 결과라 할 수 있다.
네 개의 다리와 의자의 틀을 제외한 의자 내부의 불규칙한 조형적 질서들이 나무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모습에서 상당히 비정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 동아시아적 표현을 빌리자면 ‘기운생동’ 한다고 할 수 있겠다. 20세기 기계미학에 찌든 눈에는 이런 처리가 약소해 보이고 적응이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 미학적으로는 대단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서양의 전통적인 조형방식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조형적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서양에서는 항상 기하학적인 형태 아니면 장식적인 형태 밖에는 만들지 않았고, 그것이 조형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에서 20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굳건히 장악하고 있었다. 간단해 보이지만 서양에서 이런 형태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어떤 특별한 이유나 문화적 접촉이 없었다면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형태인 것이다. 특히 나무의 불규칙한 특성을 조형적이고도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은 서양 사람들, 혹은 현대인들이 분명히 자연을 보는 눈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불규칙한 조형적 특징을 구사했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그것도 전체적인 조형미와 콘셉이 맞아야 예술적 가치와 의미를 평가 받게 된다. 부홀렉 형제가 만든 의자는 그런 면에서 매우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나무가 자라서 의자가 만들어졌다는 인상을 주는 형태나 나무의 이미지를 직접적이지 않고 간접적으로 암시하면서 불규칙한 자연미를 잘 표현한 점은 내용과 형식면에서 대단히 뛰어난 완성도를 이루고 있다.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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