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주의라는 말을 대할 때마다 만병통치약이 생각난다. 어떤 유형의, 어떤 모양의 한국문화라도 자연주의라는 말만 갖다 붙여놓으면 별탈이 없다. 그러나 만병통치약이 아무 병도 못 고치는 것처럼, 자연주의는 한국문화에 대해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 한다. 예컨대 닭실마을의 청암정을 보고 자연주의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것만으로는 왜 이런 바위 위에 어렵사리 정자를 지어 놓았는지 알 수 없다.
물과 바위가 어울린 모습이 적잖게 아름다워서 그것만으로도 보는 이의 가슴을 열어 놓는다. 하지만 이 모습을 단지 자연스럽다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감흥에 겨운 마음만을 추스르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것만으로는 이 정자의 아름다움을 더듬지도 못한다.
우선 커다란 바위 위에 정자 건물을 세워 놓았을 때는 그냥 자연스럽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건물 안에다 나무나 바위를 놓는 것에 비한다면, 바위 위에 정자를 짓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렇게 어려운 일을 일부러 했을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자연스럽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바위의 모양을 좀 멀리서 바라보면 짐작할 수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바위인 것 같지만, 멀리서 보면 어쩐지 거북이를 닮았다. 그렇게 보면 이 정자는 거북이 등 위에 올라탄 꼴이 된다. 아마도 거북이 등 위에 올라있는 정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론적인 내용을 생각하고 보면 이 정자와 주변 자연에 담긴 진면목이 서서히 드러난다.
거북이 모양의 바위 주변이 연못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원래 여기는 물이 있는 연못이 아니었다고 한다. 거북이 모양의 바위 주변도 사실은 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거북이는 물에서 살아야 하는 법. 그 때문에 이 정자를 지은 사람은 바위 주변도 파서 물을 끌어들여왔고, 덕분에 이처럼 지극히 아름다운 정자를 만들게 되었다.
결과는 자연스럽지만 그것은 아무 생각없이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라 매우 의도적인, 철저한 공간해석과 자연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의지에 의한 결과였던 것이다. 이런것을 두고 그저 자연스럽다고만 말한다는 것은 위대한 예술품을 디자인했던 선조들에 대한 심한 결례가 아닐까 싶다.
같은 의도라 하더라도 서양 사람이었으면 아마도 밑에 있는 바위를 그냥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장식 가득한 거북이 모양을 조각하여 거북이스럽게 생긴 자연석의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완전히 훼손했을 것이다. 위에 있는 건물도 이처럼 소박하게 짓지 않았을 것이다. 화려한 지붕과 단단한 돌로 초자연적 양식의 건물을 만들었을 것이다. 만약 이 공간이 인공적인 양식과 기교로만 가득찼으면 이처럼 자연스럽고 신비스러운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공간이 자연 그대로의 모양이 아니라. 지극히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것이다.
건물은 말할 것도 없고, 자연스러운 바위에도 오르는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연못도 땅을 파서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고, 채워진 물들도 바깥에서 수로를 통해 인위적으로 끌어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공간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자연의 향기는 어찌된 일일까? 거기에 우리 선조들의 피나는 노력과 생각이 숨어있다. 인공적인 것이 한껏 드러나게 만드는 것은 쉽지만, 이처럼 사람의 손길을 자연으로 감추는 것은 그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어려운 길을 택해서라도 자연스럽게 만들려고 했다는 것을 우리는 읽어야 한다.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chk869@hanmail.net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