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를 흔히 자연스럽다고 하지만 그 정도로 한국문화의 자연스러운 특징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회마을 같이 옛날 동네 모습이 오롯이 남아있는 곳도 드물지만, 이런 마을에 지금까지 전해오는 것은 마을의 담벼락이나 건물 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눈앞에 보이는 이런 대상들은 오히려 진짜가 아닐 수 있다. 소나무와 기와만 얹어 놓은 ‘한옥스러운’ 집들이 우리의 산천을 훼손하고 있는 경우는 지천에 널려있다. 어쩌면 전통을 빙자한 전통파괴가 더 무서운 것인지 모른다. 하회마을에 남아있는 것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담벼락 너머에서부터 마을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산이다. 마을 어느 곳에 가더라도 마을을 둘러싼 산들을 볼 수 있다. 너무 당연하니까 지나치기 쉽지만 서양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서양의 마을이나 도시는 기본적으로 자연이 분리되어 존재한다.

물론 큰 산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서양의 도시는 기본적으로 자연이 들어올 틈을 완벽히 차단하면서 형성되었다. 기하학적 질서로 이루어진 도시 안으로는 어떠한 자연도 파고들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골목이 아니라 집 안으로도 거대한 산들이 담을 넘어 들어오게 되어 있다. 자세히 보면 일부러 그렇게 집을 디자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담벼락의 높이나 건물의 위치, 지붕의 선들과 저 너머에 있는 산들이 이루는 조형적 관계를 보면 이런 어울림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담 바깥으로부터 자연이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담의 높이를 현저하게 낮추어 놓은 경우 그런 의도들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자연스럽다는 우리 문화의 특징은 그저 우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매우 조직적인 의도와 구체적인 실천으로 실현된 결과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무기연당을 보면 자연을 실현하려는 우리 문화의 의도적인 노력을 더욱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방지 즉, 사각형 모양의 연못과 그 주위의 건물은 매우 인위적 성격이 강하다.
구조적으로 보면 매우 기하학적 논리로 꾸려진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 불규칙하게 생긴 섬과 제멋대로 자란 소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이 섬과 나무가 정확한 원이나 직선 모양이었다면 과연 어떤 분위기가 되었을까? 이 정원을 디자인한 사람은 인위적인 정원의 모습에 불규칙한 자연을 끌어들여 매우 매력적인 공간을 창조하였다.

그저 자연이 담벼락 너머로 들어오도록 한 정도가 아니라 자연을 정원 안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모습에서 우리는 자연을 단지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중요한 조형요소로 대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봉화에 있는 닭실마을 청암정에서는 그런 적극적 의지를 더욱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chk8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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