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인들은 패션쇼를 보면서도 감동을 느끼고 새로운 영감을 기대한다. 패션쇼는 단지 다가올 계절의 옷을 먼저 보여주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 하는 것이 아니다. 패션과 쇼, 어느 쪽에 비중을 더 두느냐에 따라, 단순하게 옷의 나열을 볼 수도 있고, 한 편의 예술적인 연극을 감상할 수도 있게 된다.
관성의 법칙은 물리학만이 아니라 패션쇼에도 적용된다. 늘 화려하고 볼거리 많은 쇼를 보여왔던 존 갈리아노나 후세인 샬라얀의 패션쇼를 찾을 때면 이번엔 얼마나 독특하고 기발한 쇼를 선보일지 기대하게 되고, 매번 비슷한 시즌 상품을 만들어내는 브랜드의 컬렉션은 쇼 자체에 대한 기대는 접고 진짜 입을 수 있는 옷이 얼마나 있는가에 집중해서 보게 된다.
패션쇼는 이렇게 선보이는 디자이너와 그것을 보는 관객으로 나뉜다. 디자이너가 나타내고자 했던 주제나 방법이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리 화려하고, 투자를 많이 한 쇼라도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패션쇼도 예술 작품처럼 작가와 관객의 소통이 중요해졌으며, 꼼꼼한 기획을 통해 그 효과를 극대화 할 필요가 있다.
패션쇼는 그림과 똑같다. 구상을 표현하느냐, 추상을 표현하느냐의 차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일상에서 보이는 것들을 재현하는 경우와, 형이상학적 세계를 쇼로 표현하는 경우로 나뉘어진다. 재현되는 주제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패션이라면 당연히 아름다운 것들을 표현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그 누구도 입에 담기 싫어하는 어둡고 추한 주제를 패션쇼로 풀어내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디자이너들이 디올, 샤넬, 에르메스 등 거대 기업이 된 브랜드라면, 후자는 반항의 정신으로 가득 찼던 알렉산더 맥퀸이 있다.
빅터 앤 롤프의 쇼는 그런 면에서 흥미롭고 예술적인 패션쇼를 보기에 좋은 입문용 패션쇼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나타내려고 하는 주제는 쉽다. 패션과 쇼가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가 명확하다. 형이상학적으로 생각할 것 없이 직격탄을 날린다. 선보이는 옷 자체가 평범하지 않기 때문에 몽환적인 무대와 어우러져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사진>에서 보이는 쇼도 일종의 구상의 세계, 그 중에서도 아름다움을 표현한 경우이다. 빅터 앤 롤프의 2012 S/S 컬렉션 무대를 감상해 보자. 거대하고 큰 치마에 얹혀진 빛과 그림자를 상징하는 듯한 두 여가수의 노래를 배경으로 치마가 걷히면서 그 안에서 바비 인형 같은 모델들이 걸어 나온다.
이 컬렉션의 주제는 더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단순 명료하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인형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마치 인형옷을 만들기 위해 일반적인 옷과 같은 땀 간격으로 바느질을 하거나 같은 무늬를 사용해도 크기가 몇 백분의 1로 줄어들기 때문에 바느질 간격도 더 커보이고, 무늬도 확대되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과대하게 확대된 스티치 선이나, 거대한 곡선 무늬, 인형옷 특유의 색들을 사용하여 모델들이 더욱 인형처럼 보인다. 이렇듯 단순한 주제를 중심으로 옷과 무대가 어우러질 때 우리는 인상에 남는 패션쇼를 감상할 수 있게 된다.
고학수 객원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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