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기만큼 유럽의 고전적 전통이 많이 배어있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몇 백 년이 된 피아노나 바이올린 등이 21세기에도 여전한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스트라디바리의 악기 같은 것들은 3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체 불가능한 악기로 남아 있다. 그 어떠한 첨단 기술도 오래된 악기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악기의 대명사로 세계적인 명성과 신뢰를 쌓고 있는 브랜드가 야마하이다.
야마하가 자리를 잡은 데는 이유가 있다. 야마하는 프로페셔널 연주자가 아니라면 감히 만질 수도 없었던 클래식한 악기들을 마치 전자제품처럼 대중들이 친근하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결정판이 바로 ‘사일런트’ 시리즈다. 야마하의 ‘사일런트’ 시리즈는 유럽의 악기전통을 일본적인 아이디어와 디자인으로, 고전 속의 대중성을 실현했다. 헤드폰을 끼고 자기가 연주하는 악기소리를 자기만 들을 수 있게 만든 이 악기는, 현대 주거방식이나 현대적 생활에 고전적인 악기를 완벽하게 적응시킨 것이다. 고전성을 바탕으로 대중성을 추구하는 야마하의 노선을 가장 잘 드러낸 경우다. 아울러 야마하의 성공을 불러일으킨 결정적인 아이템이었다.
이러한 야마하의 음악의 대중성을 지향하는 행보 뒤에는 야스히로 키라(吉良康宏)와 같은 디자이너들의 공헌이 컸다. 그는 1970년에 입사한 뒤로 지금까지 수많은 야마하의 악기들을 디자인했고, 사일런트 현악기와 같은 세계적인 디자인을 주도했던 장본인이다.
악기는 소리와 관련되기 때문에 시각 중심인 디자인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게다가 악기는 대체로 매우 고전적인 모양을 하고 있고, 또 그래야만 신뢰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야스히로 키라는 현대의 첨단기술을 가지고 고전적 성격과 소리를 시각적 특징으로 환원해서 악기를 디자인 했다. 그의 노력으로 야마하는 유일하게 첨단 기술을 악기에 도입했고, 그것은 유럽에서도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원인이 됐다.
야마하가 처음부터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원래 어쿠스틱한 고전 악기들은 전부 유럽에서 나와 전 세계에 전파됐고, 일본까지 건너갔다. 그래서 악기라고 하면 유럽이 원조라는 공식이 확고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야마하는 정면대결을 펼치기 보다는 그가 가진 새로운 기술과 디자인을 결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가진 새로운 유형의 악기를 만들었다.
그것이 거꾸로 유럽으로까지 전파되었던 것이다. 이런 성공 뒤에는 야마하 악기의 뛰어난 디자인도 큰 역할을 했다.
사일런트 시리즈를 보면 고전적이면서도 대단히 미래지향적으로 보인다. 그런 미래지향적인 이미지가 소비자들에게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을만했지만, 제품을 디자인할 때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면서도 고전악기의 전통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했다.
전통적인 악기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현대적 기술을 접목하는 데에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현대적이면서도 고전적인 매우 모순적인 디자인을 갖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통 바이올린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초보자들이라도 사일런트 바이올린을 연주하면 ‘아! 나도 이제 바이올린을 시작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chk8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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