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라노 중심에 우뚝 선 밀라노 대성당은 무려 500년 동안 지어진 건물답게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인다. 넓은 광장에 수직으로 솟구쳐있는 건물의 웅장한 기운은 압도적인 느낌과 함께 칸트가 말한 ‘숭고미’를 그대로 보여준다.
건물의 표면을 수놓고 있는 수많은 장식들의 어울림도 지극한 조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장식이 죄악”이라고 한 독일의 건축가 아돌프 로스(Adolf Loos)의 말을 아무리 상기한다고 해도 이 아름다운 장식들이 빚어내는 시각적 효과에 거부감을 표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많은 요소들이 이처럼 큰 구조물 위에서 서로 다투지 않고 어울리기란 정말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들여 만든 노력을 생각하면 이 건물은 건축물이기 보다는 공예품에 가까울 정도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잔뜩 투시된 깊고 어두운 공간이 나타난다.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공간 안에서는 신심이 샘솟는 듯하다. 짙은 어둠 속을 파고드는 밝은 빛 줄기들이 자아내는 드라마틱한 광경들은 그런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숲 속 개울가에 차분하게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한국의 정자 건축물이 덜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듯 한 자연의 싱그러운 맛이 순식간에 마음속으로 다가온다. 계곡의 암반과 그 위를 흐르는 시원한 물줄기들, 그리고 푸르름으로 가득 찬 숲과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면서 만드는 아름다움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이 건축물과 더불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자연들은, 500년간 지어진 밀라노 대성당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오랜 세월을 거쳐서 형성된 것이다. 만일 이 소박한 숲과 물과 바위들을 직접 손으로 만든다고 한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까?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 것을 예술로 치지 않는 서양의 편협한 미학적 관점을 없애고 본다면, 이 곳이 주는 아름다움이 거대한 성당에 비해 덜 아름다워 보일 이유가 없다. 조금 더 건축물에 가까이 가보자.
자연 암반에 축대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충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솜씨가 없어서 그렇게 만들었을까?
조선의 대학자인 회재 이언적이 직접 설계해서 만든 ‘독락당 계정’(경주 고택 보물 413호)이라는 집을 생각한다면 그게 아니란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렇게 대충(?) 만든 덕분에 암반과 집은 경계 없이 하나로 잘 어우러진다.
밀라노 대성당은 성당 건물이 주변과 독립된 형태로 인지되면서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준다. 반면에 ‘독락당 계정’은 주변의 자연공간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우리에게 멋지게 다가온다.

그것을 생각하면 선조들의 부족한 듯한 뒤처리가 고도의 계산법이라는 사실을 짚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집 안으로 들어가 보자. 정자로 올라가 마루에 앉으면 이런 아름다운 장면이 건물 안으로 들어온다. 다듬어지지 않은 싱그러운 자연이 이 장소를 그 어떤 곳보다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서양과는 단지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방식이 다를 뿐인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위해 자연물에 인위적인 손길을 많이 가했다면, 우리 선조들은 아름다움을 위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활용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밀라노 대성당에 감동을 받았던 사람이라면, 이 ‘독락당 계정’에서도 같은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한국의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많은 관심과 말들이 있다. 그런데 진정 그것을 알고 싶다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다양할 수 있다는 데에 대해 먼저 마음을 열어 놓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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