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가집도 없애고?
르네상스인들은 바로 앞의 고딕을 경멸했다. 정신이 천박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식을 모두 없애고, 정신성이 듬뿍 담긴 심플한 르네상스 스타일을 추구했다. 그런 점에서 베니스의 건축들은 좀 문제가 있었다. 특히 베니스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두칼레 궁은 고딕 스타일 뿐 아니라, 이슬람 지역의 영향을 받은 이질적인 스타일이었다. 이단의 스타일이라고 해도 아무 말을 할 수 없는 그런 모양이었다.
당시에도 이것은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정부가 먼저 팔을 걷어 붙였다. 건축가 산소비노(Jacopo Sansovino)로 하여금 산마르코 광장을 그리스-로마의 고전 양식으로 개조하고 마침 큰 불로 소실된 총독궁을 르네상스풍으로 개축하도록 했다.

하지만 베네치아 의회가 제동을 걸었다. 아무리 이국적이고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오리엔트적 인상이 강한 전통을 지키는 것이 옳다는 의지였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장면이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는 것처럼 두칼레 궁을 이때 깔끔한 르네상스 양식으로 바꾸었다면, 그래서 피렌체나 다른 이탈리아의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르네상스식의 건물을 세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현명한 베니스 의회는 두 가지 제안을 모두 거부하고 원래 모습 그대로 두기로 했다.
덕분에 베니스는 이탈리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궁을 가지게 되었고, 바로 이런 오리엔트 풍의 건물을 보기 위해 지금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베니스를 방문 하고 있다. 선조들의 현명한 선택이 오늘날 베니스 후손들에게 큰 자산이 되고 있다. 오리엔트를 향한 강한 의지와 미 의식이 건물 하나 뿐 아니라 오늘날 베니스를 지키고 구한 것이다. 우리의 초가집들은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500여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두칼레 궁은 옛날처럼 지금도 지중해를 향해 있다. 과거의 화려한 영화를 쫓아 바다로 들어갈 것만 같은 모습이다. 역시 지중해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텅빈 광장의 비어있음도 억겁의 세월을 담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두칼레 궁보다 더 이국적인 스타일을 한 건물이 바로 이 궁 바로 옆에 서 있다. 베니스를 대표하는 건물, 베니스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이 건물, 산 마르코 성당이다.
두칼레 궁에서 산마르코 측면 광장을 따라 들어가면 건물로부터 매우 강렬한 이미지를 느끼게 된다. 차분하고 경건한 피렌체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인상과는 몹시 다르다. 특히 크지 않지만 둥근 돔이 여러 개 얹혀 있는 성당의 모습은 매우 이국적이다. 피렌체나 로마의 것보다는 터키나 중동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들에 가깝다.
이것만 봐도 베니스가 오리엔트 지역과 얼마나 교류를 많이 했는지 절감하게 된다. 그리고 베니스의 독특한 이국적 감수성에 크게 심호흡을 해볼 수 있다.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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