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칼레 궁전 앞에서 옛 영광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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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디자인 기행

2012-07-27 오후 1:26:49



1204년 베니스는 제4차 십자군을 콘스탄티노플로 보내 먹잇감인 콘스탄티노플을 아주 효과적으로 약탈한다. 적의 파괴는 나의 성공을 의미했다. 비잔틴 제국이 분열의 나락으로 빠지면서 베니스는 지중해의 세력을 확장시키게 된다. 1381년에는 경쟁자 제노바를 물리치고 세계 무역의 중심지인 지중해 동부의 무역을 전부 장악하게 된다. 그렇게 베니스는 유럽인들이 엄청나게 찾았던 희귀하고 비싼 여러 가지 향신료와 후추를 독점하게 된다. 14세기부터는 대형 무역선을 만들어 주변의 경쟁자들을 앞서게 되는데, 이를 통해 베니스는 아드리아 해의 여왕, 지중해 최강자로 군림하여 한 세기 동안 지중해를 석권한다.


◇ 지중해 최강자로 우뚝 선 베니스
아프리카에서 캐낸 금, 중부 유럽으로부터 공급된 은․후추․약재․실크와 시리아산 목화 등, 세계 곳곳으로부터 물품들이 베니스로 집결하여 서유럽 전체에 공급되었다. 이런 귀한 물품들은 수많은 수송선에 의해 운반되었는데, 그래서 수륙양용의 도시 베니스는 곳곳이 갖가지 선박들로 가득 찼다.


그런 황금기의 뒤편으로부터는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자신감에 넘쳐 나왔다. 무엇보다 베니스의 이런 영화를 가능케 했던 군사력, 외교력 등이 수행되었던 베니스 정치의 중심에 그런 자신감들이 더욱 힘차게 나타났었다. 그 정치의 중심지가 바로 지중해 무역선들을 정면에서 보고 있었던 두칼레 궁이었다.


궁의 모습은 르네상스의 단단함이 서려있는 피렌체와는 사뭇 다르다. 건물에 레이스가 쳐져있는 것 같 부드럽고 화사한 느낌은 이탈리아 위에 이국적인 비잔틴의 분위기가 잔뜩 덮여있다. 이 건물은 역대 베니스의 총독들이 근무했던 관저였으며, 정부와 감옥이 같이 있는 베니스의 정치와 사법의 중추적인 건물이었다.



◇ 베니스 영광의 상징 두칼레궁
두칼레궁은 14~15세기에 건축가 안토니오 다 폰테라는 사람이 베네치아 고딕양식으로 설계했다. 고딕건축이라고 하면 보통 높고, 어둡고, 화려한 조각이 가득한 것이 일반적인데, 이 건물에는 화려한 조각물들은 거의 없다. 그리 높지도 않고, 밝다. 인체를 묘사한 조각이 없는 것은 비잔틴의 영향인 듯 보이며, 건물의 크기나 색상은 베니스의 자연환경의 덕택이 아니었나 싶다. 이 건물은 베니스 해안으로 들고날때 보여 베니스의 얼굴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최경원 현 디자인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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