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의 중심이 파리, 귀족층 또는 부르주아, 오뜨 꾸뛰르에 있던 시절에는 대중들도 그들이 입는 패션을 동경하고 입고 싶어했다. 언론에 비춰지는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었으며 사람들의 환상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경제가 살아나고 대중들이 경제력을 가지게 되면서 패션계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대부호들이야 아직까지도 파티에 입고 갈 드레스가 필요했지만, 오뜨 꾸뛰르 옷을 살 수도, 살 필요도 없는 사람들도 디자이너의 손길이 묻어있고 남들과 차별화 되는, 고급스러운 옷에 대한 욕구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프레타 포르테, 즉 고급 기성복 컬렉션의 시작이었다.
지금까지 패션이란 이렇듯 높은 곳에서 흘러내려와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반대로, 길거리의 하위계층에서부터 파생 된 유행이 대중에 퍼지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귀족과 왕족이 현대에 여전히 존재하는 영국과, 인종의 용광로로 다양한 하위문화와 계층이 녹아있는 미국에서 새로운 패션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음악으로 사회에 대한 반항심을 한껏 드러낸 공격적인 펑크 패션과, 미국의 클럽문화와 함께 등장한 그런지 패션이다. 이러한 문화를 컬렉션으로 끌어들여 선보인 이가 90년대의 마크 제이콥스였다.
하지만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마크 제이콥스도 시간이 지나면서 스트리트 패션의 주류에서 루이 비통이라는 거대 명품 브랜드를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탈피했다. 도대체 자신을 꾸미고 싶어하는 20대의 마음을 알아주는 디자이너는 어디 있는 걸까?
그 때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알렉산더 왕이었다. 본인이 현재 20대이며, 그래서 20대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아는 디자이너였던 것이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디자이너는 당시의 유행했던 아이템들을 다시 끄집어 내어 재해석함으로써 20대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허벅지까지 오는 레깅스, 워커, 스웨트 셔츠와 청 남방 등이 그 대상이었다. 여기에 그는 지퍼와 징, 스터드 등 무게감이 있는 금속 장식을 사용하여 강인한 여성을 표현하는데 집중했다. 알렉산더 왕이 마크 제이콥스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마크 제이콥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는 마크가 전성기를 누렸던 시기의 패션을 이해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 알렉산더의 능력을 알아봤기 때문 아닐까.
알렉산더 왕의 티셔츠도 20대의 마음을 잘 파고든 아이템이다. 시작은 순수하게 자신이 필요로 했던 질 좋은 티셔츠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고, 그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짐에 따라 티셔츠 한 벌에 30만원도 아깝지 않게 지불하는 팬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알렉산더 왕의 컬렉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코드를 더 읽어내야 한다. 미국 디자이너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그것, 바로 스포츠웨어다. 스포츠 전문 브랜드와 다른 디자이너의 패셔너블한 스포츠 웨어, 알렉산더 왕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고학수 현디자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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