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와 하늘을 빼면 베니스에서 가장 보기 어려운 건 자연이다. 그러니까 베니스에서 사람의 발길이 닿는 거의 모든 것은 인공적인 것이다. 이것은 참 슬프고 고단한 사실이다. 베니스를 채우고 있는 모든 인공적인 것들, 나무 한 줄기 돌 조각 하나도 모두, 전란을 피해 갯벌과 섬으로 어쩔 수 없이 밀려 내려온 사람들의 공포 스런 손길에 의해 옮겨지고, 다듬어진 것이다. 그래서 베니스에서는 집들이 마당과 대문 없이 바다에서 곧바로 올라온 초현실적 풍경이 만들어졌고, 달동네 같은 좁은 골목길들로 가득찬 희한한 도시 구조가 만들어졌다.

구체적으로 이 도시는 아드리아 해의 바다 밑 점토층에 수백만 개의 떡갈나무 말뚝을 박고 그 위에 건물들을 지어 도시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118개나 되는 수많은 섬과 117개에 이르는 운하들 위로 400개의 다리를 연결하여 물고기 모양의 도시가 된 게 바로 베니스이다.
아무리 황량하고 거칠더라도 도시라면 당연히 기반이 되는 땅과 나무와 강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당연한 것들이 이곳 베니스에서는 모두가 결핍이었고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내야만 했다. 사람이 서 있을 공간도 부족했을 열악한 공간 위에서 오로지 자신의 팔과 다리의 근육만으로 도시를 만들어야 했으니 그 뒤에 얼마나 가공할 만한 노력이 들어갔을 것이란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바다로 내 쫓긴 사람들이 그렇게 맨 손으로 만들기 시작하여 어느 정도 도시의 면모가 갖추어지기 시작한 것이 9세기 전후부터라고 한다.
그 옛날 도구도, 환경도 갖추어지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서 얼마나 많은 양들의 땀방울이 바닷물에 흘러들어갔는지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베니스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경관들을 보면 그래서 무언가 모를 처연함이 먼저 다가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도시는 다른 곳처럼 왕이나 귀족들이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돈과 권위로 만든 게 아니라, 유배를 강요당한 몇 천 명의 사람들이 생사를 걸고 만든 도시다. 그 과정에서 슬프고 힘든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이 도시를 채우고 있는 자유로운 활기와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도시는 시민들의 고통과 눈물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비상한 상상력이 더해져서 일구어진 곳이었다. 살아야 하겠다는 절박함과 수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들이 이 도시의 전체와 부분을 디자인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는 비록 세월의 무게가 많이 실리긴 했지만 생존을 위한 기능성 위에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린 유기적인 디자인의 정수가 담겨있다.
오늘날 거대하고 호화로운, 하지만 획일적이고 삶을 돌보지 않는 디자인으로 가득 찬 도시들에 있어서는 큰 교훈이 될 만한 도시라 할 수 있다.

권력을 가진 종교와 가문의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는 건물들이 척추를 이루고 있고, 그 틈새로 일반 시민들의 삶이 힘겹게 기생하고 있는 피렌체와 같은 도시들과는 도시계획의 근본부터가 다르다.
아무튼 그렇게 도시가 어렵게 만들어진 이후로 베니스는 황금기를 누리며 이탈리아에서도 발군의 도시로 눈부시게 성장한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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