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외 패션계는 ‘입생로랑 vs 칼 라거펠트’, ‘마크 제이콥스 vs 톰 포드’의 계보를 이을 라이벌로 신예 라프 시몬스와 에디 슬리만을 꼽았다. 1954년 국제양모사무국 콘테스트에서 코트 부문 1위 칼 라거펠트와 드레스 부문 1위 입생로랑은 이후 같으면서도 다른 길을 가며 숙명적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그러나 입생로랑이 라거펠트가 주도하는 패스트 패션을 햄버거 패션이라고 비난하며 은퇴 선언 후 얼마 안 있어 사망하면서 둘의 전쟁은 전설이 되었다. 한편 ‘구찌’의 프린스 톰 포드와 ‘루이 비통’의 프린스 마크 제이콥스는 PPR그룹과 LVMH그룹의 ‘럭셔리가 왕자전’을 통해 럭셔리 대리전을 치뤘지만 톰
포드가 구찌를 떠나면서 패션계는 특별한 라이벌 구도가 없는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라프 시몬스는 존 갈리아노가 떠난 디올의 신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되어 데뷔 무대(?)인 2012 가을/겨울 디올 꾸튀르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디올 옴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역임했던 에디 슬리만은 경쟁 관계에 있는 입생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새로운 둥지를 틀면서 자연스럽게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다.
하지만 서로 물어뜯는 대결 구도로 가 주길 원하는 언론의 희망사항과는 달리 둘은 선배 디자이너들의 배타적 라이벌 구도가 아닌 뉴 제너레이션 디자이너의 리더로서 소통의 라이벌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가 아니라 “우리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는 ‘동업자 정신’이다. 둘은 공통점이 많다. 선배 칼 라거펠트처럼 대중 앞에서 얼굴이 붉어지지 않을 정도로 얼굴이 두껍지 않으며, 성격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언론의 비판적 글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하다고 한다.
우리 패션계에도 라이벌 구도가 있다. 먼저 디자이너 진태옥과 이신우, 이영희의 트로이카 시대였다. 세 사람은 생계형(?) 늦깎이 주부 디자이너로 패션계에 발을 디뎠지만 타고난 패션 DNA와 노력으로 90년대 들어 도쿄 컬렉션과 파리 컬렉션, 뉴욕 컬렉션을 통해 최고의 트로이카 전성기를 누렸다. 조선 백자를 닮은 진태옥, 고구려 벽화를 닮은 이신우, 바람의 옷 이영희까지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을 우리는 한국 패션의 레전드라 부른다. 남자 디자이너 트로이카도 있다. ‘박철봉’으로 불리는 디자이너 박윤수, 김철웅, 이상봉이 그 주인공들이다. 중앙디자인그룹 출신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1980년대에서 2000년대에 중견 디자이너로, SFAA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며 선의의 경쟁과 우정을 쌓아왔다.
최근 떠오르는 신 트로이카는 ‘고범준’이라 불리는 디자이너 고태용, 최범석, 강동준이다. 요즘 가요계 대세가 ‘버스커 버스커’의 장범준이라면 한국 패션계의 대세는 ‘고범준’인 셈이다. 고범준 3인방은 같은 듯 다르다. 대졸, 중졸, 유학파 등 가방 끈 길이도 틀리고 인터넷, 동대문, 뉴욕 등 패션을 시작한 장소와 계기도 전혀 다르다.
하지만 패션 철학은 같다. “옷이란 대중들이 입어 즐거워야 한다. 패션은 스타일이자 문화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만드는 옷은 쉽고 패션쇼도 드라마틱하고 재밌다. 서로 형님, 동생하는 우호적 라이벌 관계인 이들은 남성복 디자이너라는 공통점과 SNS와 미디어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는 소셜테이너 디자이너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발족한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에서도 운영위원으로, 이사로, 감사로 각각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K팝과 드라마를 통한 한류 바람에서 알 수 있듯이 21세기 글로컬 시대의 문화 예술의 수출 키워드는 ‘스타를 소비하는 시대’라는 점이다. 스타 없는 패션 비즈니스는 결국 패션의 4P 마케팅에서 프로모션이 빠진 것과 진배없다. 고부가가치 측면이나 럭셔리 하우스의 경우를 보면 “잘 키운 스타 디자이너 한 명, 열 브랜드 안 부럽다”라는 말이 일견 타당해 보인다. 왜냐하면 요즘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이 콜래보레이션이라는 X-마케팅을 통해 대립이 아닌 소통을 중시하는 새로운 형태의 한 지붕 두 가족을 만들어 반응이 좋기 때문이다.
스타가 소비하는 엔터테인먼트 시대, 패션도 예외는 없다. 젊은 스타 디자이너의 라이벌 구도 형성은 다이나믹한 패션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원천일 뿐 만 아니라 ‘패션 전쟁’이라는 재밌는 볼거리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한다. 남성복 ‘고범준’ 트로이카처럼 여성복 트로이카도 곧 나오기를 고대해 본다.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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