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다. 대단한 출세를 의미하는 이 속담은 보통 과거에 급제했을 때 쓰는 등용문과 같은 의미로 그 출처는 중국 역사서 후한서(後漢書)다. 황하강 상류에 용문(龍門)이라는 계곡이 있었다. 그 협곡은 물살이 매우 빨라 하류의 무수한 잉어들이 상류로 올라가 알을 낳기 위해 모이지만, 대부분 급류에 밀려 하류로 다시 내려오고 만다.
그러나 간혹 천신(天神)이 불을 내려 꼬리를 태우면 뜨거워 튀어 오르는 놈도 있는데, 이곳을 통과하는 잉어는 용이 되어 승천(昇天)을 했다. 그 용문에 오르는 것이 바로 등용문(登龍門)이라는 것이다. 등용문과 반대 의미로 출세 경쟁에서의 패배자나 시험 낙방자는 ‘점액(點額)’이라고 불렀다. 점(點)은 상처를 입는다는 뜻이고 액(額)은 이마인데, 즉 용문에 오르려 급류에 도전하다 바위에 이마를 부딪쳐 상처를 입고 하류로 떠내려가는 물고기라는 뜻이다.
요즘 미디어를 보면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세다. 가수, 요리사, 모델, 배우, 디자이너 등 영역도 다양하다. 이들 프로그램의 특징은 상금이 크다, 그 상금을 1등이 독식한다, 매회 배틀로 탈락자를 정해 최후의 1인으로 좁혀간다, 일단 1등을 하면 하루 아침에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진다는 점이다.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격인 M-net의 슈퍼스타K는 우승 상금 5억원 행사로 요즘 인기 상종가인 허각과 버스커버스커, 울라라세션를 배출했다. 오는 10월에 열리는 대한민국패션대전도 30년째다. 1983년 제1회 대한민국 패션디자인 경진대회로 시작된 이 행사의 캐치프레이즈는 ‘국내 최고 권위의 신인 디자이너 등용문’이다. 용이 될 스타 디자이너를 뽑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총 6천만원 상금에 연령, 경력, 소속 제한없이 국내외 거주 한국 국적 보유자면 누구나 참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지원자 중 다수가 패션 관련 대학 졸업 예정자들이거나 예비 디자이너라는 점이다. 여기에 일부 대학에서는 따로 패션대전반을 따로 만들어 학생들의 참가를 독려할 정도로 학교 입장에서 보면 또다른 홍보 수단이다.
그 이유는 수상자 지원 내용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패션업체 인턴쉽 참가 지원, 패션 전문가 초청 및 현장 방문 교육 지원, 해외 패션 학원 유학 기회 제공, 인디브랜드페어 참가 지원 등 자금이 부족해 용이 되지 못하는 예비 스타 디자이너를 뽑는 것이 아니라 미래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패션 꿈나무를 뽑는 행사라는 점이다.
지난 30년 동안 패션대전을 통해 대상 수상자를 비롯 수많은 신진 디자이너(?)들이 배출됐지만 대부분 대학 강단이나 내셔널 브랜드 디자이너로 들어갔고 필자 기억으로 현재 디자이너 브랜드로 화랄하게 활동하는 대상 수상자로는 안태옥이 유일하다. 그룹 프리미에라는 역대 수상자 모임도 있지만 활동이 저조하다. 이제 대한민국패션대전도 스타 디자이너 등용문에 맞게 선발 시스템을 역동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지금같이 상 나눠주기식 동기 부여형 패션 백일장으로는 대한민국 대표 디자이너를 만들 수 없다. 한 명의 용을 만들기 위해 다수의 잉어들이 점액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서바이벌 기법을 도입해야 한다. 두번째로는 다국적 기업과의 스폰서십을 통해 1등 상금을 올려야 한다. 적어도 프런트 런어웨이 코리아의 상금 1억원을 넘는 상금을 1등에게 주어야만 실력있는 국내외 디자이너의 참가를 유도할 수 있다. 세번째로는 문호를 전 세계 디자이너에게 개방해야 한다. 외국 디자이너들과 서바이벌 배틀을 가쳐 뽑힌 한 명의 용이 바로 글로벌 디자이너로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네번째로는 수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지원과 멘토링을 통해 디자이너를 키워야 한다. 경력 한줄로 만족하기에는 쏟아부운 열정과 시간이 아깝다.
속담에 “잉어국 먹고 용 트림한다.”는 말이 있다. 별로 실속 없는 일을 하고 큰 성과가 있는 것처럼 과장한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패션대전이 실질적인 신진 디자이너의 등용문이 되기 위해서는 스타 디자이너를 배출해야 한다. 스타가 나오면 당연히 스타를 꿈꾸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패션 대전에 몰려들 것은 당연한 이치다. 요즘은 옷 잘 만드는 패션 디자이너보다 스타 디자이너의 잘 만든 옷을 더 선호하는 시대다.
강산이 4번째 변하는 내년 대한민국패션대전부터는 시대 정신과 트렌드에 맞는 글로벌 스텐다드의 패션 콘테스트 행사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해 본다.
유재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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