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철이나 아크릴, 나무 등 딱딱한 공업적 재료에 비해 천이라는 재료의 매력은 유연성에 있다. 인체 위에 둘러졌을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주름은 그 자체로 장식도 되고 옷에 깊이를 부여한다. 그것은 빛과 만났을 때 생기는 명암 덕분이다. 주름과 빛이 만나 옷 위에 그늘이 지면서 화려한 무늬나 부가적인 장식 없이도 저명도의 그림자와 천의 대비로 장식적인 기능이 증폭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늘어진 천의 주름, 즉 드레이핑의 매력을 이용한 패션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에 걸쳐진 옷들이 그러하다. 인체를 속박하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우아함을 부여한 옷이었다. 이후로 서양의 패션은 천을 조각 내어 3차원의 인체에 꼭 맞도록 발전해 왔으며, 그것은 여성의 몸과 정신을 구속하였다. 이성의 발달로 모더니즘 사회가 태동하고 의상 개혁운동이 일어나면서 코르셋과 크리놀린(치마를 부풀리기 위한 스커트 버팀대), 과도한 장식들이 여성의 옷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옷들의 대안으로 등장한 스타일 중 하나가 그리스 복식에서 영감을 받은 드레이핑 드레스였다. 마들렌비오네는 그리스 조각에서 보여주는 인체를 따라 자연스럽게 늘어진 옷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바이어스 커팅 기법을 연구하여 편안하면서도 고전미가 넘치는옷을 만들었다.
이후 마담 그레는 주름 하나하나를 일일이 고정시키면서 비오네와는 다른 주름의 미학을 만들었으며, 이탈리아 고전주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베르사체의 여신 같은 드레스까지 많은 디자이너들이 천 하나로 그 우아함과 화려함을 담는 드레이핑 기법을 활용한 디자인을 발전시켜 왔다.
최근 드레이핑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단연 두리 정이다. 2000년대 뉴욕에서 떠오른 아시아 디자이너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데뷔하고 자리잡은 그녀는 초기부터 자신의 디자인을 대표하는 아이템으로 드레이핑을 선택했다. 그것은 드레이핑의 미학적인 측면과 함께 뉴요커적인 실용적인 가능성을 간파했기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편안함이다. 사실 마담 그레나베르사체의 주름진 의상은 주름의 미학적 측면만을 극대화하여 조각 같은 인체와 섹시한 여신의 이미지만 남게 되었다. 따라서 드레이핑드레스가 원래 가지고 있던 여성의 몸을 편안하게 하려는 기능적 측면은 없어졌다. 두리 정은 드레이핑의 편안함이라는 가치를 다시 발견한 것이다.
즉, 마담 그레와베르사체의 드페이핑 드레스는 상체에는 엄청난 기교로 아름다운 주름을 잡아 장식을 하지만 허리를 꼭 조여 S라인이 강조되는 의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뉴요커인 두리 정은 일하는 현대여성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을 했다.
두리 정에게 드레이핑 된 천은 여성들의 최대 고민인 배와 옆구리 살을, 그것도 우아하게 감출 수 있는 최고의 기법이다. 그녀의 의상 전면에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이고 엉킨 주름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다. 게다가 저지 소재를 사용하여 더욱 인체에 편안함과 여유로움, 넉넉함을 부여했다. 그녀의 뿌리인 동양의 핵심 가치가 현대적으로 잘 승화된 것이다.
고학수 현 디자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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