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테크의 한계를 보여준 리처드 로저스의 로이드 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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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놀라게 하는 디자인

2012-06-25 오후 5:21:50


이 건물이 처음 나왔을 때의 그 논란들을 생각하면 런던 도심 한 복판에 그림자처럼 조용히 서 있는 모습은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지금 이 건물은 런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노먼 포스터의 스위스르 빌딩 근처에 있다. 두 건물이 지근거리에 있어서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는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리처드 로저스의 이 건물의 명성이 바로 이웃에 있는 건물로 건너가 버렸다는 느낌을 설명 없이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그만큼 초라해졌다고나 할까. 건물의 외모도 이제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차갑고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도심 한복판에 서 있을 명품 건축물이라기 보다는 공단에나 들어설 법한 이미지의 건물이다. 한 마디로 공장같다. 바로 그런 이미지 때문에 이 건물의 명성이 세계를 강타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황량함을 남기는 구조물만 남았다. 처음 이 건물은 하이테크를 건축에 적용한 것으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번쩍이는 질감 공장 구조물같은 이미지들은 그런 하이테크성을 가득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하이테크가 하이테크로 받아질 때 만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하이테크의 그런 차가움이 눈을 시리게 만들고,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다.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마음이 변덕스러워진 것일까.


이 건물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건물들은 토지의 활용도를 집약적으로 구현한 입방체 모양에, 장식이 없어야만 모던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 건물은 그런 건축물의 고정관념을 부쉬고, 그동안 건물 안쪽에 감추어졌던 부분을 건물을 장식하는 요소로, 건물의 외부로 빼는 발상의 혁명을 가져왔다. 그 때문에 당대 건축물에 상상력을 북돋워주는 명작으로 대접을 받았다.


당시 이 건물의 화두는 ‘하이테크’였다. 이런 건물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기존의 모더니즘 건축이 한계에 다다라 많은 비판을 들으면서 새로운 분위기의 건축적 개념들이 봇물 터지듯이 터져 나오던 분위기가 세계적으로 팽배했다. 소위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불리는 경향들이 새로운 건축이나 문화의 흐름으로 나타났다. 이 건물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여러 경향 가운데에서 기술적인 부분, 첨단 기술을 화두로 삼아 디자인 되었던 건축물이었다.


당시의 분위기는 모더니즘의 딱딱함을 벗어나서 건물에 새로운 가치를 집어넣은 훌륭한, 그리고 파격적인 건물로 인정받았었다. 게다가 건물에 내장될 부분을 모두 건물 바깥으로 꺼낸 것은 기존의 건축물에 대한 반항의 의미로도 해석되면서 아방가르드한 건물로서 지적 지위도 함께 누렸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날 노먼 포스터의 스위스 르 빌딩 근처에 서늘하게 서있는 모습에서는 그런 파격적이고 뜨거운 비판의 정신이나 새로움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그만큼 세월이 흘러버렸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지만 특히, 하이테크라고 주장하던 가치들이 오늘날에는 전혀 하이테크하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 지적으로 스산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오늘날 자하 하디드의 유기적인 건물들이나 프랭크 게리의 휘어진 건물들이 건물에 대한 선입견들을 무자비하게 부숴 버리는 것 상황에서 이제는 금속성의 하이테크 이미지는 하이테크가 아니라 낡은 기계시대의 고물처럼 퇴락해 보인다.


세상이 변한 것이다. 건축물에 담긴 정신이 기술에 자리를 내어 주었을 때 닥치는 불행한 상황이 바로 이런 것이다. 예술적 가치를 가지지 못한, 그래서 지금도 테크놀로지에 자신을 맡겨버리는 예술가들이나 디자이너들에게 큰 교훈을 주는 건물이 아닐까 싶다.



최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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