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맛 우유와 한정식 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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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5 오후 4:52:50

공기처럼 너무 익숙해져서 그 소중함이나 존재감을 잃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흔히 바나나 우유라고 불리는 ‘바나나 맛 우유’도 필자에겐 공기같은 존재다. 반투명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이 연한 노란색 액체는 사람으로 치면 은퇴할 나이가 되었지만 요즘도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음료 중에서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콜라나 환타처럼 색이 화려한 것도, 용기 모양이 뛰어난 것도, 맛이 인상적인 것도 아니다. 물 건너온 럭셔리 과일(?) 바나나가 귀한 시절이라 단지 우유에 바나나 향 조금 첨가했을 뿐인데 이렇게 오랫동안 한국인의 사랑을 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정작 바나나가 풍성한 아프리카에도 없는 음료인데 말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한국인의 인심을 닮은 넉넉한 용기 때문이 아닐까. 위아래가 좁고 허리가 풍만한 용기는 조선시대 달 항아리를 닮았다. 딱히 멋있거나 화려하지도 않고 그저 수수하고 둥글둥글한 맵시가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다. 또한 넘쳐나는 수입 음료들을 제치고 오랜 세월 변함없이 사랑받는 이유는 각박하게 기능성만을 따지지 않고, 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넉넉한 자태 때문이었으리라.


어떤 이태리 교포는 한류 바람을 편승해 고급 한식당을 열었다. 천연 조미료에 재료도 유기농을 써서 그야말로 웰빙 한정식을 요리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음식을 맛본 이태리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 맛이 아니다”라며 고개를 저었던 것. 바로 인공 조미료 때문이다. 이들 이태리인들이 한국의 재래시장이나 전국 여행지에서 경험한 대부분 음식에 들어있던 인공 조미료 맛을 한국의 맛으로 인식하고 돌아간 것이다. 결국 전략을 바꿔 인공 조미료를 넣은 가정식 백반을 내 놓았더니 “바로 이 맛”이라며 좋아하더란다. 상황이 이러한데 화려한 색감의 궁중 음식이나 국적 불문의 퓨전 요리로 음식을 수출하겠다고 하니 그 결과가 신통치 않은 것은 당연한 결과다.


외국인들이 기억하는 한국의 맛은 호텔에서 먹은 고급 한정식이 아닌, 다수의 한국민이 흔히 분식점에서 먹는 서민적인 가정식 백반이었다. 물론 조금이라도 더 자식을 먹이려는 우리 어머니들의 정이 담긴 마더 마케팅도 함께 말이다. 한국에서는 서민적인 찜질방이 미국에서 고급 스파로 각광받는 것과 같은이치일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한류 덕분에 외국인들에게 한복은 드라마 <대장금>과 <주몽>에서 주인공들이 입고 나온 화려한 궁중 복식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우리 한복은 조선시대 양반댁 규수들이 입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왜 우리의 한복은 치마저고리나 두루마기에서 더 발전하지 못하는지 아쉬운 마음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화려한 백제와 신라, 웅장한 고구려, 주위 여러 나라 복식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 단안한 조선 왕조까지 5천년에 걸친 궁중 복식적 해리티지는 풍부하다. 일본의 기모노나 유럽의 화려한 중세 패션과 벨 에포크 시대 드레스가 모두 왕족이나 귀족의 복식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통 의상으로서의 한복은 현재 실용성으로나 미학적으로나 한국 패션에서 그 존재감이 아주 미미하다. 결국 전통 의상 한복이 패션으로 변주되어 한류 패션으로 세계인을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앙드레김이 보여준 통일 신라의 화려함, 이신우가 보여준 고구려의 웅장함, 진태옥이 보여준 조선의 서민적 단아함이 조화를 이루는 패션 다양성이 필요하다.


요즘 야구 인기가 상종가다. 야구가 인기인 이유는 마니아 수준의 대중적 사랑과 세계적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된 경기력 때문이다. 또한 올림픽 금메달, WBC 준우승 등 미국 메이저리그에 뒤지지 않는 한국 출신 스타 야구 선수들의 실력을 눈으로 확인한 팬들은 더 이상 밤 새워 미국 야구를 보지 않는다. 할리우드발 블록버스터 영화 공급에도 한국 영화가 승승장구하는 것 또한 야구의 성공 비결과 일맥상통한다.


한류 패션도 마찬가지다. 패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니아급 소비자들과 그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출 수 있는 스타 디자이너가 나와야 한류 패션은 한국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 바나나 맛 우유와 가정식 백반에서 알 수 있듯이 콜라나 파스타와는 다른 분명 우리만의 색깔과 맛이 있다. 흔히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말한다. 결국 한류 패션의 성공 열쇠는 바로 우리 디자이너들 자신에게 있는 셈이다.



유재부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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